‘감옥이 유달리 추운 것은 사람의 느낌 때문일까? 실제 기온차이 때문일까?’
감옥의 추위는 세상보다 빨리 찾아옵니다. 11월 초순, 서대문 형무소 옥사내부는, 한낮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밀려오는 냉기로 마음구석까지 얼어붙는 듯 합니다. 햇빛이 제대로 들지 않고 난방시설조차 없는 곳에서 한겨울 몰아치는 동장군은 인간인내의 한계를 시험하는 극한 상황을 연출했을 것입니다. 더구나 갇혀있는 방이 독방이었다면 그로 인해 느끼는 고립감의 깊이는 추위를 더욱 견디기 힘든 상태로 몰아쳤을 것입니다.
기다랗게 이어져있는 복도에 들어서니 그 옛날 수갑을 차고 포승줄에 묶인 채 일제경찰에 이끌려 이 통로를 오갔을 수인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이 복도에 서서 독립투사들은 비분강개한 심정으로 조국 독립에 대한 투쟁 의지를 불태웠을 것입니다. 잡범들은 여기에 들어오게 된 사연을 곱씹으며 출소의 날을 기다렸을 것입니다. 사형수들은 어느 날 예고없이 찾아온 사형집행 날에 자신을 끌고가는 간수들의 긴장된 눈초리를 보며 이승에서의 마지막 날을 직감했을 것입니다.
복도를 걸어가다 그 중 한 방의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어쩜 이렇게 별 차이가 없을까?’
대학시절 민주화 투쟁의 와중에 복역하였던 의왕시 서울구치소 풍경이 떠오르며 스쳐간 생각이었습니다. 감옥내부의 풍경이 일제시대나 현대나 별 차이가 없는 것을 보면 감옥은 더 이상 진화할 필요가 없는 성질의 것인가 봅니다.
복도도 싸늘하지만 감옥의 방 내부는 그 싸늘함 정도가 더하게 느껴집니다. 그래도 복도가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동적인 공간인데 비해 감옥의 방은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닫혀버린 공간이라는 특징이 비교됩니다. 사람의 신체를 떠받치는 두 다리의 이동기능이 더 이상 필요 없어져 버리는 곳입니다. 그 비좁은 공간에서 그래도 다리의 기능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수십분씩 제자리 걸음과 뜀뛰기를 했던 감옥시절 모습이 기억 납니다.
‘독재정권이 우리의 몸을 가두었지만 마음을 가둘 수는 없다. 만일 마음마저 몸과 함께 갇혀버린다면 우리는 저들의 의도에 철저히 놀아난 꼴이 되고 만다. 이런 때일수록 마음의 공간을 넉넉히 하여 자유함을 노래할 수 있는 해방자가 되자’
건물을 빠져나오니 백범 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가 상해 홍쿠우 공원 의거 전에 함께 찍은 사진이 실물크기로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함께 온 아이들이 그 주변에서 호기심어린 눈동자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그들의 족적이 머리에 그려졌습니다. 두 분 다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한많은 삶을 마감하였지만 21세기에 들어선지 오래된 오늘날에도 국민들의 마음에 살아 숨쉬는 것을 보며 진정한 자유인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얼마 전에 김구 선생의 얼굴이 새로이 발행되는 화폐에 등장한다는 소식이 생각납니다.
이승만이나 박정희가 아닌 김구 선생의 모습이 화폐에 등장하는 것은 그래도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뿌리가 어디에서 출발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이승만의 나라, 박정희의 나라가 아닌 김구가 꿈꾸는 나라였던 ‘세계의 약소국가의 한을 끌어안는 문화강국 대한민국의 비전’이 21세기에 꼭 이루어지길 기도해봅니다. ‘김구의 나라’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 그 과제는 우리세대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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