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기인들의 행복에 대해 상상하다
‘과연 누가 더 행복하였을까?’
양양 오산리 선사박물관에 들어서니 ‘옛 선인’들의 삶이 궁금해진다. ‘행복’이란 단어가 생각났다. 선사시대에 비해 물질문명이 첨단을 달리고 수명도 비교할 수 없이 늘어났다. 하지만 지금의 삶이 행복하다고 누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B.C. 6천년경 일단의 사람들이 이곳 오산리에 자리를 잡았다. 강과 바다가 인접해 있어서 더할 나위없는 생활터전이었다. 거기에다 백두대간 능선이 차가운 북서풍을 막아주니 추위도 견딜 수 있다. 아직 본격적 농경사회로 접어들기 전이다. 생계수단의 대부분은 고기잡이와 열매채집, 그리고 사냥이다. 사냥과 고기잡이는 주로 남자들의 몫이었고 여자들은 채집에 나섰다.
박물관 내부에는 신석기인들의 다양한 생활모습을 재현한 모형들이 전시되어 있다. 찾는 이들로 하여금 그 당시 생활상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듯하다. 고기잡이하는 모습, 조개를 끓이는 모습, 토기를 제작하거나 그물을 손질하는 장면 등이 다양하게 꾸며져 있다.
움집내부에는 불이 피워져 있는 화덕도 보인다. 동굴에서 살던 구석기인들이 강가나 바닷가로 나오면서 새로운 주거지가 필요하였다. 이동생활에 익숙하였던 사람들에게 정착생활이라는 새로운 주거방식이 등장하면서 그들이 우선 해결해야 할 것은 비바람과 추위를 막아 줄 보호막이었다. 그 고심의 결과물로 등장한 게 움집이다. 바닥을 반지하 형식으로 다지고 원추형으로 갈대나 이엉 억새를 엮었다. 한가운데에는 화덕자리도 만들었다. 족외혼이 행해지면서 이전보다 가족의 개념이 강화되었다. 움집은 4,5인 정도의 규모가 생활하기 적절한 형태로서 가족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기능을 하였다.
구석기 시대와 다른 신석기 시대의 대표적 모습을 들라면 뭐니 뭐니 해도 토기의 등장이다. 사람이 불과 흙을 이용하여 최초로 만들어 낸 발명품이 바로 토기다. 이것으로 곡식을 요리하기도 하고 조개를 끓이기도 하고 저장도 했다. 강가나 바닷가 모래지형에서 편리함을 의식해 바닥모양을 뾰족하게 만드는 지혜도 발휘했다. 겉 표면에는 다른 도구를 이용하여 빗살무늬를 새겨 넣기도 하였다.
훗날 학자들에 의해 ‘신석기 혁명’이라 불렸던 농사의 시작은 위와 같은 신석기인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비록 사유재산의 개념이 형성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원시농경의 시작은 사냥과 채집에만 의존하던 기존의 삶에 일대변화를 몰고 왔다. 농사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게 물이다. 비가 내리는 하늘을 공경하고 자연 속에 숨겨져 있는 초월적 힘을 두려워하며 그들에 대한 숭배의식이 싹트기 시작했다. 한편으론 조상신 섬김에 대한 의식도 형성되면서 원시종교의 탄생을 가져왔다.
‘흙으로 빚은 얼굴상’
양양 오산리 유적지에서 출토된 사람얼굴상이다. 가로 4.3cm, 세로 5.0cm의 가량의 작고 둥근 점토판을 손가락으로 눌러 사람 얼굴 모양을 표현했다. 풍요를 기원하며 만든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신상의 하나로 그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고 한다. 신석기 시대에는 사람얼굴이 다양하게 제작되었다. 나무는 물론이고 조개껍데기 가면, 동물 뼈, 암석 등 그 재료가 여러 종류다. 이러한 사람얼굴상들은 풍요를 기원하고 재앙을 막는 주술적 의미로 제작된 것으로 그 부족의 수호신을 상징하는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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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내부를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퍼즐 맞추기 게임순서가 있다.
아까 보았던 사람얼굴상과 빗살무늬 토기 두 종류다. 아내와 아이가 각각 한 파트씩 맡아 게임에 도전해보았다. 그런데 손쉽게 맞출 줄 알았던 퍼즐이 제대로 안 맞추어진다. 아이를 도와줄 요량으로 다가갔더니 손을 뿌리친다. 혼자 힘으로 해보겠다는 자세다. 드디어 엄마보다 빨리 완성에 도달한 아이가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기념촬영 포즈를 취한다. 마치 자신이 발굴한 유물이라도 되는 듯이 어깨를 으쓱거린다.
박물관 견학 프로그램이 그것으로 끝인가 싶었는데 이번에는 진흙에 무늬 새기기 순서가 있다. 신석기인들이 토기제작당시 ‘빗살무늬’등 다양한 조각을 새겨 넣은 것을 체험을 통해 연상하는 프로그램인 것 같다. 아이는 또다시 덤벼들더니 무늬를 새겨 넣는 예술행위를 한다. 그리고 그 무늬위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8천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신석기인들과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그러한 아이를 보며 신석기 얼굴상이 빙그레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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