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및 논평

무엇을 위한 열정이었을까?

김포대두 정왕룡 2008. 4. 11. 11:39
 

아직껏 잠겨있는 목이 풀리지 않고 약을 먹어도 설사는 계속되고 몸살기운이 떠나지 않은 채 새벽에 잠이 깼습니다. 한차례 거대한 해일이 휩쓸고 지나간 해변에 홀로 서있는 기분입니다. 저마다 총선 결과에 대해 수많은 분석을 내놓습니다.


박근혜의 승리, 이명박 측근의 낙선, 수도권 한나라당 압승, 자유선진당 충남 석권........


그 와중에 단골메뉴로 등장하는게 전대협 의장출신들이 중심이 된 386 의원들의 대거 낙선현상입니다. 어떤 곳에서는 ‘386 탄돌이 몰락’이라는 비아냥 거리는 제목도 눈에 띱니다.


‘노무현 정권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 아직도 가시지 않은 탓에 피해를 봤다’는 어떤 386 친구의  패인분석 인터뷰 기사를 읽으며 쓴 웃음이 나왔습니다.


‘28.71%’

민주당 김포 선거구 김창집 후보가 얻은 성적표입니다.

아예 후보도 못낼 뻔 하다가 선거돌입 이틀 전에야 김후보께서 어렵게 결심을 하여 선거운동에 뛰어든 상황치고는 상당히 선전을 했다는 평가가 여기저기서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14년간 군수, 시장, 국회의원을 거치며  아성을 구축해 온 유정복씨의 65.57%의 성적에 비하면 웬지 초라해 보임은 어쩔 수 없습니다.


김포 시민이 된지 8년차이지만 이번처럼 유세차량에 올라타 김포전역을 단기간 내에 누비고 다닌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시의원이 된 후로 김포를 그래도 가볼만한 곳은 다 가보았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김포는 넓고 사람은 많았습니다.


통집읍 마송 장날, 북변동 김포읍 장날, 고촌 체육대회, 풍무동, 북변동 일대 아파트 알뜰시장, 하성면 태산가족 공원, 걸포 중앙공원....................


뭐니 뭐니해도 가장 많이 목소리 높여 유세를 하였던 곳은 사우동 시청앞 사거리와 원마트 사거리였습니다. 김포에서 가장 번화가인 탓에 유동인구가 많은 두 지역이어서 각 후보간에 자리다툼도 치열하게 벌어진 곳이었습니다.


선거막판에는 원마트 앞에서 유정복 후보 진영이 타후보측은 아랑곳 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쉬임없이 로고송과 연설을 계속 틀어대다가 참다못한 저의 맞방송으로 경찰까지 출동하기도 하였습니다. 한나라당 선거팀의 횡포를 운집한 시민들 앞에 그대로 고발하여 박수를 받는 등 공감을 이끌어내고 결국 연설을 깔끔하게 마무리 하였습니다.


선거운동 기간내내 쟁점으로 부상하였던 ‘김포도시철도 논란’은 공세의 고삐를 우리측에서 쥐었지만 집권여당의 프리미엄을 내세우며 적절히 방어를 한 유정복 후보측에 비해 네거티브의 한계를 못 벗어났다는 자평을 해봅니다.


선거운동 기간내내 유세차량과 함께 다니며 연설을 할 때 마다 마주치는 많은 분들에게 호소하는 내용은 ‘이명박 정부의 실정’과 유정복씨의 ‘김포지역 장기집권 폐단’에 대한 공격이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우리 후보측에서 내거는 비전제시의 부각이 미흡하다보니 포지티브 전환이 안되었던 점은 작년 대선때의 BBK 공방 때의 틀을 못 벗어났다는 아쉬움을 남깁니다.


여러 가지 바쁜 일과를 소화하며 잘 버틴다 싶었는데 선거종료 하루전에 한꺼번에 몰려온 감기몸살에 결국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어지간해서는 병원에 안가고 몸으로 때우는 스타일인 내가 병원에 가서 주사를 자청해서 맞았습니다. 성대결절이 원인이 되어 감기, 몸살, 설사까지 몰려왔다며 안정을 취하라는 의사의 조언에도 선거종료일에 다시 마이크를 잡고 풍무동 일대를 한번 더 돈 뒤, 원마트 앞에서 마무리  마이크까지 잡았습니다.


그리고 밤 10시, 차량방송 선거운동 마감시간, 여성 운동원들과 함께 선거사무실로 올라오는 발걸음이 무거운 납덩이 같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이불 뒤집어쓰고 누워버렸습니다. 새벽에 눈을 떠보니 아이 엄마가 차가운 물수건으로 이마와 겨드랑이의 땀을 닦아내고 있었습니다. 얼굴 표정을 보니 ‘당신 선거 때도 그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몸까지 아파가면서 이렇게까지 했어야 했느냐’는 책망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도 대구에 가고 싶다’

선거운동 기간내내 틈틈이 인터넷 서핑할 때마다 올라오는 유시민 선거운동 글과 사진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입니다. 특히 전국에서 함께 내려가 길가에서 신명나게 몸을 흔들며 환호하는 사람들을 보며 2002년 대선때의 노사모 선거축제가 생각나기도 하였습니다. 오늘의 나를 여기까지 밀고 오게한 동력이었던 2002년의 꿈들이 흩어지고 부서진 줄 알았는데 대구 한복판에서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음을 보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하였습니다.

 

'무엇을 위한 열정이었을까?'

오기가 생겼던 것 같습니다.

마음이야 당장 대구로 달려가고 싶지만 김포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대구 뿐만이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지역을 지키며 흩어져 버린 희망의 불씨를 다시 지피기 위해 애쓰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지고 이기고는 그 다음의 문제였습니다. 아직도 내 안에 지난날의 열정이 남아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열정이 남아있다면 80년대의 화석으로서가 아니라 21세기 버전으로서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지 거리에서 직접 부딪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안에서 쏟아내고 싶은 이야기는 다 쏟아내고 싶었습니다.


유정복 후보 바로 앞에서 ‘당신은 메니페스토를 말할 자격이 없다. 김포 난개발을 초래한 장본인이 누구에게 사과를 요구하느냐’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하였고 ‘오렌지면 어떻고 '아륀지'면 어떤가. 우리 아이들이 다시금 강남 1% 사람들에 주눅들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당당함을 잃어버리는 세상을 만들 것인가’라고 시민들에게 호소하기도 하였습니다.


한반도 대운하에 대해 ‘환경대재앙’이라 이야기하면서도 결론은 ‘신중한 추진’을 이야기한 유정복 후보의 의견피력에 대해 ‘내용과 결론이 어긋난 전형적 정치꾼의 어법’이라며 대학논술 답안지를 낸다면 낙제점을 받을 것이라고 꼬집기도 하였습니다. 저의 발언이 자꾸 예민한 부분을 건드리면서 민감해진 유정복 후보의 선거운동원이 제 연설 도중 내용을 체크하는 것은 물론이고 동영상을 찍고 녹취까지 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이미 승패는 정해졌을 정도로 상당부분 앞서나가는 측의 모습치고는 시간이 지날수록 유정복씨 자신을 비롯하여 과민하다 싶을 정도로 반응하는 상대후보팀의 모습을 보면서 일정부분 선거 판짜기에는 성공했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역시 거리는 뜨거웠습니다.

격려해주시는 분, 음료수 내미시는 분, 지나가다 차를 세우고 경적을 울리며 손가락을 치켜 세우시던 분, 박수를 치시는 분................


하지만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선거운동 기간내내 극히 일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선거결과는 아직은 좁힐 수 없는 커다란 격차가 있음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좀 더 일찍 준비하고 뛰어들었더라면!’

유세도중 만나뵙는 분들에게 틈틈이 들었던 아쉬움의 말들입니다.

하지만 준비과정의 문제도 문제였지만 여전히 제 가슴에 선거운동 기간내내 갖고 다녔던 의문은 ‘견제의 힘’을 호소 하면서도 과연 통합민주당이라는 그릇에 담긴 내용이 무엇이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매번 유세를 하고나면 2% 부족함이 밀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대선직후라 하더라도 저쪽이 한나라당이라는 색채를 자랑스럽게 내세울 때 중앙당 지원은 커녕 정당조차 당당히 내세우지 못하고 인물로만 승부할 수 밖에 없었던게 현실이었습니다. 전국적으로 쟁점화 시킬 수 있는 몇가지 계기가 있었음에도 이를 기회로 만들어내지 못하여 각 지역의 자체역량에 맡겨버린 중앙단위의 지도력에 의문이 갔습니다.


‘이 색깔이 노란색이었다면!!!!’

선거운동 기간내내 입고다닌 통합민주당의 상징 연두빛 잠바가 김포 들녘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었는데도 아직 나에겐 낯선 색깔이었습니다. 그 녹색바탕에 혹 깔려있을지도 모를 열린 우리당의 노란색 흔적을 찾아보려 애썼지만 쉽지가 않았습니다. 선거앞에서 힘을 모아야 한다는 대의명분앞에 나선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자발적 가입이었던 개혁당, 열린 우리당과 달리 통합의 물결에 휩쓸려 자동가입이 되어버린 통합민주당의 정체성은 아직도 가슴에 녹아들지 않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렇게 시선이 따가웠어도 자랑스럽게 노란 깃발을 내세우고 다녔던 5.31 선거와 달리 이번 총선의 연두색은 승패를 떠나 신바람을 안겨주는 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과연 이 연두색이 나에게 맞는 색깔인지 향후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 다가올 것 같습니다.


원마트앞 마지막 유세에서 시민들을 향해 토해냈던 연설내용 일부를 기억에 의존해 옮겨보며 선거후기를 마칠까 합니다.


“시민 여러분, 내일 선거결과 당락에 연연해 하지 않고 우리는 다시 깃발을 들 것입니다. 겸허하게 결과를 받아 들이고 그 속에 담긴 시민의 목소리를 경청하며 다시 시작할 것입니다. 우리들의 목소리가 시민 여러분들의 가슴을 울리기에 부족했다면 그것을 솔직히 인정하고 다시 처음부터 출발할 것입니다. 4.19후 유신독재가 무너지기까지 20년이 흘렀습니다. 5.18 광주 항쟁이후 전두환 독재가 무너지기까지 7년이 걸렸습니다. 그 암울했던 시절도 이겨낸 자랑스런 역사가 있는데 시민 여러분이 다시 시작하라 명하신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간 소음공해를 일으키고 상가 영업하시는 분들에게 장사방해를 일으킨 점 죄송스럽게 생각하며 이만 물러갑니다.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시민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