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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기타가 있어 행복한 사람들 -김포뉴스

김포대두 정왕룡 2009. 8. 18. 11:06

   

‘아빠 엄마, 연주회장에 와 있어?’
‘아니, 아직도 도착하려면 먼 거 같아. 시간을 장담 못하겠어’

‘우리들 순서는 다 끝났고 합동 연주회만 남았는데 그때까지라도 왔음 좋겠다’
‘부지런히 갈려고 노력하고 있어.’

 

8월 14일, 광복절 하루 전 외곽순환도로 중동 나들목으로 내려서는 길은 답답하기만 하다.
김포에서 넉넉잡고 6시 약간 넘어 출발했다. 연주회장인 부천 경기예고 까지는 금요일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연주회 시작시간인 7시까지는 충분하지 싶었다. 하지만 웬걸. 김포 톨게이트 빠져나가기 전부터 명절날 귀성길을 방불케 할 정도로 외곽순환도로는 주차장으로 돌변해버렸다. 아이는 자기들의 연주 순서가 이미 끝났다며 어른들과의 합동 연주회 전까지라도 와달라고 연방 문자를 날린다.

 

“이러다가 연주회 참석은커녕 아이 데리러 가는 반짝 외출로 변해버리는 것은 아닐까?”
옆자리에 앉은 아이 엄마가 아이를 안심시키는 답변 문자를 날리면서도 정작 자신은 초조한 듯 내뱉는 말에 달리 할 말이 없다.

 

‘김포에 번듯한 연주회장만 있더라도 부천까지 가서 연주회를 할 일은 없었을 텐데.’
괜히 내가 민망하다. 시의원의 역할이 한계가 있긴 하지만 나 역시 빈약한 김포의 문화기반 시설에 일말의 책임이 있는 것 같아 속으로 밀려드는 답답함에도 그냥 정면의 차들만 응시한다.

드디어 연주회장인 경기예고 도착. 7시 40분이다. 경기 아트홀 옆문을 통해 조용히 들어서니 지도를 담당하고 계시는 남주현 선생이 마이크를 잡고 곡 해설을 하고 계신다. 단상에는 인천 기타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올라와 있다. 장내를 둘러보니 아이들은 안 보인다. 아마도 무대 뒤나 다른 공간에서 다음 순서를 준비하고 있을 거다.

 

In The Mood, Maggie의 추억, ABBA Medley가 연주되었다.

어느새 연주회장에 도착하느라 진땀을 흘렸던 심정은 봄눈 녹듯 사라지고 기타선율이 부드럽게 주변을 감싸고돈다. 특히 ‘Maggie의 추억’이 다양한 변주형식을 통해 울려 퍼질 땐 어릴 적 추억의 나래가 함께 겹쳐지며 고향의 풍경이 눈앞을 스쳐간다.

 

‘아. 그러고 보니 스와니 강을 못 들었네?’
집에서 가끔 아이가 연습하던 곡이다. 물어보았더니 이번 연주회 곡목이란다. 요즘 학교 음악책에는 어떤 곡이 실려 있는지 잘 모른다. 하지만 Maggie의 추억이나 스와니 강, 켄터키 옛집, 오 스잔나 등 미국민요에 젖어 자란 어린 시절 이다보니 이 곡들이 향수를 자극한다. 음악배경이 어느 지역이건 상관없이 ‘고향, 추억’등의 정서는 세계 공통어인 것 같다.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못 듣게 된 ‘스와니 강’이 못내 아쉽다. 몸이 불편함에도 아이 연주회에 애써 참석한 아내는 옆자리에서 어깨를 가볍게 들썩이며 콧노래까지 흥얼거린다. 찻길에서 답답해하던 표정은 온데 간데 없다.

 

“일주일만 하더라도 클래식 기타와 친구가 될 수 있답니다.”
남주현 선생이 중간에 양념으로 곁들인 멘트다.

 

‘클래식 기타에 미친 선생’
작년 늦가을 연주회 때 당시 전세훈 김포 교육장께서 축사시간에 남선생님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다. 진짜 그 말씀처럼 남주현 선생을 적절히 표현한 말은 없는 것 같다. 김포 전 지역을 대상으로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으로 클래식 기타반을 개설, 전국적 모범 사례로 끌어올리기까지의 노고는 자타가 공인하는 바다. 아무리 클래식 기타가 좋다 하더라도 개인시간까지 바쳐가며 쏟아 붓는 그 열정에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안녕!’
합동연주회 시간에 김포칸타빌레 학생들 사이에 끼어 아이가 입장한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이 마주치고 손짓 표정까지 더해 입체적 인사를 나누었다.

아이가 고맙다. 작년 연주회 때는 친구 둘이서 함께 하였는데 그새 혼자가 되었다. 아직 중1의 나이에 풍무동에서 고촌 신곡중까지 기타 연습하러 혼자 다니기가 쉽지 않은 길인데 그래도 꿋꿋하게 버티어줘 고맙기만 하다. 오늘 아침엔 오전7시까지 신곡중학교에 모여서  부천 연주회장으로 이동, 연습한 다음 다시 김포에 왔다가 오후에 부천으로 또다시 이동했다한다. 일년이 지난사이 후배들 몇 명이 생겼지만 여전히 까마득한 언니 오빠들 사이에서 차분하게 기타줄을 뜯는 모습이 미안하고 대견스럽기만 하다. 잠시 고개를 들어 연주회장을 둘러보니 많은 학부모들이 와 계시다. 다들 비쳐지는 표정들이 내 느낌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입시에 찌들어있는 아이들에게 ‘클래식 기타’등과 친구가 된다는 것은 특별한 모험일 수 밖에 없는 이 땅의 교육환경이 안타깝기만 하다.

 

‘아하! 저 분이 지휘까지?’
연주회 때 유달리 눈에 띠는 여성 한 분이 있었다. 왼쪽 가장자리에 앉아 파워 넘치는 몸짓에 멜로디를 담당하면서 전체의 분위기를 리드하는 분이었다. 그런데 합동 연주회 때 지휘봉을 들고 입장 하신다. 연주 못지않게 지휘역시 카리스마가 넘친다. 여성 지휘자는 별로 눈에 띠지 않는 게 우리네 음악 풍토다. 그런 면에서 더욱 눈길을 끈다. 팸플릿을 보니 이미경 선생이라 쓰여 있다.

 

‘그럼 남선생님은 지휘를 안하시나?’
궁금증을 기다리기라도 한듯이 남주현 선생님이 이어서 연미복을 입고 등장하신다.
앙코르 곡 ‘알함브라 궁전’등 여러 곡을 소화하신다. 중간 중간에 흥겨움이 더해질 때는 청중들도 같이 박수를 친다. 앞자리에 앉은 학생 청중 한 명이 월드컵 응원하듯이 허공에 두 손을 휘젓다가 쑥스러움을 감추려는 듯 한바탕 웃음을 터뜨린다. 역시 우리네 정서는 ‘엄숙 진지’ 이런 분위기보다 무대와 객석을 뛰어넘는 신명나는 분위기가 제격인 듯싶다.

 

모든 순서가 끝났다.
연주회장에 아는 분이 없을 줄 알았는데 김용국 김포 교육장, 이영우 김포시의회 의장과 인사를 나누었다.  낯이 익은 학부형 한 분과 인사를 나누었다. 초등학교 6학년 아이를 이번에 배우게 했다한다. 김포 청소년 향토순례에 같이 참여하였던 분이다. 다들 이곳까지 오면서 교통 때문에 고생하신 듯 했다. 그래도 타지(?)에서 해후하는 기분이 제법 찐하다.

 

“아빠, 무대아래에서 박수호응이 나니까 왠지 짜릿하더라.”
“응, 아빠 엄마도 열심히 쳤어. 참 좋았단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왠지 흥이 안 났어. 그런데 어느 사이에 자리가 차기 시작하더니 박수소리가 귀에 들리는데 다들 괜히 신나는 거 있지? 아마도 빅뱅 콘서트는 진짜 대단할거야”
“그게 바로 음악을 통한 소통이라는 거야”

“피이, 아빠 또 유식한 척 한다. 어쨌든 오늘은 푹 잘 거니까 내일 아침 깨우기 없기다.”

돌아가는 길 또한 차가 막히는 것은 오던 길과 똑같다. 레커 차량과 교통경찰 차량이 달려가는 것을 보니 차사고가 났나보다. 아이는 ‘운전 조심’하라며 어느새 잠이 들어 버렸다. 그래도 돌아가는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다. 훗날 언젠가 다른 지역 사람들이 문화 인프라가 갖춰진 김포로 공연관람을 올 때는, 편안한 나들이가 되기를 기대해보며 문화김포의 미래를 꿈꾸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