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사람들, 지방선거 ‘태풍의 눈’으로
(위클리경향 / 권순철 / 2010-04-20)
‘친노진영’이 부활하고 있다.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들의 초반 성적은 기대 이상이다. 한명숙·김두관·안희정·이광재 등 친노 진영 후보들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1, 2위를 달리는 등 경쟁력이 충분한 것으로 나타났다. ‘친노진영’은 부활을 넘어 확실한 정치세력으로의 자리매김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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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영결식이 열린 지난해 5월 29일 추모 시민들이 서울시청 부근에서 노란색 풍선을 날리며 애도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
“다산 정약용 선생은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글 중에서 자신의 가족을 폐족(廢族)이라 표현하더군요. 예! 저는 폐족입니다. 죄짓고 엎드려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들과 같은 처지입니다.”
2007년 12월 26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안희정 씨가 자신의 블로그에 쓴 글 가운데 일부다. 당시 안씨는 17대 대선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난 지 일주일 만에 이 글을 작성했다. 이명박 후보는 지난 대선에서 정동영 후보를 무려 530만 표 차이로 이기고 민주개혁 진영(김대중·노무현 정부)으로부터 10년 만에 정권을 넘겨받았다. 당시 이 같은 결과는 필연적이었는지로 모른다. 최초로 정부권력(노무현 대통령)과 의회권력(열린우리당)을 동시에 거머쥔 민주개혁 진영은 2006년 5월 지방선거에서 대패한 이후 급격한 몰락의 길을 걸었다. 당시 집권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은 16개 광역단체장 가운데 유일하게 전북에서만 승리하고 다른 지역에서는 모두 패했다. 지방선거 후폭풍으로 노무현 정권에 레임덕이 빨리 찾아왔고, 패배 책임론을 놓고 분란에 휩싸인 열린우리당도 난파 직전에까지 몰렸다. 이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을 따르던 이른바 ‘친노진영’은 무능 세력으로 혹독한 비판을 받았으며, 당시 여권 정치인들은 앞다퉈 노 전 대통령을 부정하는 ‘친노색 빼기’를 가속화하기도 했다. 이 같은 집권세력 내의 분열은 보수 진영이 정권을 쉽게 잡는데 기여했다.
지방선거 후보 전국적으로 분포
당시 자신을 ‘폐족’이라며 울부짖던 안씨는 지금의 정치 상황을 어떻게 볼까. 불과 2년 반이 지난 지금 그는 민주당 최고위원이자 충남지사 후보다. 안 최고위원은 <Weekly 경향>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폐족’이라는 말을 쓴 것은 민주개혁 진영이 지리멸렬한 상황에서 비장한 각오로 재도약을 다짐하자는 얘기였다”면서 “우리가 비록 어려움에 빠져 있지만, 반드시 다시 일어나야 한다는 외침이었다”고 설명했다.
안 최고위원의 다짐대로 ‘친노진영’이 부활하고 있다. 특히 ‘친노진영’은 6·2 지방선거를 계기로 부활을 넘어 확실한 정치세력으로의 자리 매김을 꾀하고 있다. 현재 ‘친노진영’은 정치권과 정치권 밖에 다양하게 포진해 있다. 정치권에는 ▲민주당 내 친노그룹 ▲국민참여당(참여당) 그룹 ▲민주당과 참여당에 속하지 않는 무소속 그룹이 있다. 정치권 밖에는 이해찬 전 총리가 이끄는 시민주권모임, 노 전 대통령이 만든 한국미래발전연구원, ‘노무현의 가치’ 계승을 위해 창립된 노무현재단 등이 있다.
이번 지방선거를 보면 ‘친노진영’에서 전국적으로 고르게 후보들이 나서고 있다. 우선 민주당 간판으로 참여정부 때 총리를 지낸 한명숙 전 총리(서울)를 비롯해 이광재 의원(강원), 안희정 최고위원(충남) 등이 출사표를 냈다. 참여당에서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경기),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충북), 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광주) 등을 내보냈다. ‘리틀 노무현’으로 불린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은 무소속으로 경남지사 선거에 뛰어들었다.
비록 본격적인 지방선거 국면은 아니지만, 이들의 초반 성적은 기대 이상이다. 한명숙·김두관·안희정·이광재 등 친노 진영 후보들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1, 2위를 달리는 등 경쟁력이 충분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통령’으로 불리는 서울시장 선거에 나서는 한 전 총리는 뇌물수수 혐의와 관련해 무죄(1심)를 선고받고 본격적으로 선거전에 뛰어들었다. 한 전 총리는 4월 20일께 정식으로 서울시장 출마 선언을 하고 초당적인 캠프를 꾸릴 예정이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한 전 총리가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지금은 8%포인트 차이로 뒤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지난해 경기 시흥시장 보궐선거에서는 12%포인트 차이에서도 이겼다”면서 “서울시장 선거는 이명박 정부의 실정과 정치검찰의 표적수사에 대한 심판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 한 전 총리가 확실히 승리한다”고 예상했다.
인물 경쟁력·철저한 준비 등 강점
특히 경남지사에 세 번째 도전하는 김두관 전 장관의 활약은 눈에 띈다. 경남신문이 여론조사 전문 기관인 경남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3월 28일부터 30일까지 도내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여론조사를 한 결과 김 전 장관은 18.1%의 지지도로 1위를 차지한 한나라당 이달곤 전 행정안전부 장관(20.4%)과 오차 범위 내에서 각축을 벌였다. 특히 김 전 장관은 한나라당의 또 다른 경쟁자인 이방호 전 사무총장(13.2%)을 따돌렸다. 이 지역에서 한나라당이 44.3%로 압도적인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민주노동당(4.7%), 국민참여당(4.6%), 민주당(3.6%) 등 야당의 지지율이 각각 5% 이하라고 볼 때 김 전 장관의 선전은 대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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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노진영’ 인사들이 1월 27일 민주당 영등포 당사에서 안희정 최고위원(오른쪽 첫 번째)이 충남지사 선거 출마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한 뒤 박수를 치고 있다. 우철훈 기자 |
또한, 경남에서는 김 전 장관이 사실상 야권 단일 후보로 확정돼 본선에서 해 볼만하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경남지역 야권 연대는 민주당·민노당·국민참여당 등 야 3당과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희망자치만들기 경남연대’가 참여하고 있다. 김 전 장관은 “경남도민들은 이명박 정부의 수도권 중심 국정 운용에 불만이 많다”면서 “지방권력까지도 한나라당에 넘겨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충남지사 후보인 안희정 최고위원도 세종시법 수정안을 반대하는 이 지역의 정서를 업고 순항하고 있다. 안 최고위원은 이 지역의 맹주를 자처하는 자유선진당 후보와 호각세를 유지하고 있다.
광역단체장뿐만 아니라 수도권 등을 중심으로 노 전 대통령 당시 비서관이나 행정관으로 지낸 참여정부 인사들도 대거 지방선거에 뛰어들었다. 윤승용 전 청와대 홍보수석 비서관은 “노 전 대통령의 가치와 원칙이 지역 균형 발전과 생활정치였다”면서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관과 행정관들이 중앙정치 무대보다는 지방에서 대거 출마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친노진영’에서 이처럼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이들의 인물 경쟁력, 철저한 준비, 지방자치운동의 경험 등을 꼽는다. 정치컨설팅 이윈컴의 김능구 대표는 “이들이 인물경쟁력도 있지만 일찍부터 올해 지방선거에 초점을 맞추고 치밀하게 준비해 온 것 같다”면서 “광역후보뿐만 아니라 기초후보들도 지방선거에서 출격하겠다는 마음의 준비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광재 의원은 재판 중에도 <이광재 이력서>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 등 2권의 책을 집필하고 출판기념회를 여는 등 지방선거를 준비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노무현의 사람들’은 노 전 대통령과 함께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20여 년 동안 함께하면서 지방자치에 대한 실무경험을 쌓았다. 당시 멤버들이 김두관 전 장관, 안희정 최고위원, 이광재 의원, 천호선 전 청와대 대변인, 김윤식 시흥시장 등이다. 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는 “노 전 대통령은 우리나라에서 일찍부터 지방선거에 관심을 가졌다”면서 “실제로 노 전 대통령은 지방정치를 위해 본인이 부산시장으로 출마한 적도 있다”고 밝혔다.
한편에서는 민주당 정세균 대표 체제를 떠받치고 있는 주요 세력이 ‘친노 386’인 만큼 탄탄한 정치 세력이 없는 정 대표로서는 ‘친노진영’에서 후보들을 차출할 수밖에 없다는 견해도 있다.
반면에 민주당 내에서는 이들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조경태 의원은 “(정계 은퇴를 선언한 이광재 의원이 ) 정치 환경이 바뀌었다고 말 바꾸기를 하려는 움직임은 국민을 기만하는 비겁하고 기회주의적인 정치 행태”라고 비난했다.
‘친노진영’ 후보들의 선전은 지방선거일인 6월 2일이 다가올수록 더욱 확대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5월 20일~6월 1일)이 노 전 대통령의 서거 1주기(5월 23일)와 이에 따른 추모행사 기간과 겹치기 때문이다. 즉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행사가 전국적으로 이어지면서 ‘노무현 신드롬’이 다시 한 번 전국을 뒤덮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난해 노 전 대통령 서거일을 전후해 전국적으로 정부 분향소, 봉하마을 등지를 찾은 추모 인파는 500여만 명에 달했다.
실제로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예비후보자들은 노 전 대통령과의 조그만 인연도 강조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들은 후보자 경력란에 ‘노무현 ㅇㅇㅇ’로 기재한 명함을 뿌리는 경우가 많다. 민주당 공천심사위에서는 이에 따라 참여정부 행정관 등 공식직책은 인정하되 ‘노무현 후보 선대위 종사자’ 등 1년 미만의 한시적 직함은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선거기획사 리서치뷰의 안일원 대표는 “실제로 민주당 후보들 간의 여론조사 결과 노 전 대통령과의 경력이 들어간 후보가 들어가지 않는 후보보다 5~10%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이번 선거에서 ‘노무현 신드롬’은 계속 유효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 도래
노무현재단은 최근 봉하재단, 한국미래발전연구원과 함께 노 전 대통령 서거 1주기 행사를 총괄하기 위해 ‘1주기 추모행사기획단’을 구성했다. 기획단장은 문재인 전 대통령실장이 맡고 있다. 기획단은 5월 초순부터 한 달 동안 ▲박석 및 묘역 완공식 ▲봉하 추모영상관(가칭) 완공 행사 ▲추모 미술전 및 전시회 ▲추모 콘서트 ▲학술심포지엄 ▲추도식 등 전국적으로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이 가운데 일부 행사는 인터넷을 통해 생방송 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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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참여당의 시·도지사 출마자들이 3월 10일 서울 백범기념관에서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우철훈 기자 |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에서 ‘노풍’은 ‘친노진영’의 기대만큼 불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정치학)는 “국민들이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정권 교체를 시킨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면서 “‘친노진영’ 후보들도 이번 선거에서 노 전 대통령을 부각시키는 전략보다는 노 전 대통령을 넘어서는 전략을 들고 나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천안함 침몰 사고가 ‘친노진영’ 후보들에게 유리한 국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일반적으로 안보·국방문제는 보수정권의 장점으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천안함 사고는 보수정권의 단점을 직접적으로 노출시켰다.
이 때문에 지방선거 국면에서 천안함 사고와 관련해 위기관리능력 등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를 자연스럽게 비교할 수밖에 없다는 것. 정치컨설팅 포스커뮤니케이션의 이경헌 대표는 “국민들은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 사고에 대한 수습을 매끄럽게 하지 못하는 등 국정 운용의 불가측성을 볼 수밖에 없다”면서 “이 경우 자연스럽게 참여정부와 대비되면서 이명박 정부 아래에서 발생된 여러 비리문제가 다시 도마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반면에 천안함 사고는 ‘노풍’뿐만 아니라 야당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천안함 침몰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국민들은 이명박 정부를 지원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또한, 여기에는 천안함 인양과 이에 따른 실종자 수습 등 뉴스로 인해 지방선거 이슈가 부각될 수 없다는 해석도 자리 잡고 있다. 신율 명지대 교수(정치외교학)는 “대부분 야대여소인 미국의 경우도 지난 9·11 테러 당시 여대야소 상태가 유지됐다”면서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국민들은 위기대응의 일환으로 여당을 지지하는 성향이 강하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출처 : http://newsmaker.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3&artid=201004151127321&pt=n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