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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 산만 보면 피가 끓는다-장릉산 미사일 기지와 안보

김포대두 정왕룡 2010. 12. 19. 08:20

 

'나는 저산만 보면 피가 끓는다.
눈 쌓인 저 산만 보면…….'

 

김지하의 시 '지리산'에 나오는 첫 구절이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만행이(이하 연평도 사태) 자행된 날, 장릉산 정상을 바라보며 김지하의 '지리산'이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그 노랫말을 읊조리며 코가 시큰거렸다. 피까지 끓지는 않았지만 가슴이 울렁거렸다.

 

장릉산에 미사일기지가 있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사실이다. 미사일 기지 같은 주요시설 위치는 보통 군 보안사항이다. 하지만 '장릉산 미사일기지 이전 범시민대책위'가 꾸려졌을 정도니 이것을 군 보안이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내가 아는 정보로는 전국 어디에도 시청 바로 뒷산에 미사일기지가 있는 곳은 없다. 아마도 김포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김포가 산이 드문 평야지대 일색이다 보니 서울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장릉산 같은 야산이 군사전략상으로 중요한 곳이라는 것은 군대 갔다 온 사람이라면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하긴 조선시대에도 봉수대가 위치한 곳이었다 하니 강화길목 한강하구에서 장릉산의 군사전략상 비중은 역사적으로도 짐작이 가고 남는다.

 

7년 전 일이 생각난다. 지역신문에 장릉산의 민간인 출입규제 및 지뢰매설 등의 문제점에 관해 기고한 적이 있다. 이 기사를 보고 KBS VJ 클럽 담당 작가에게서 연락이 왔다. 취재 일정을 잡았다. 그 후 직접 나레이터가 되어 카메라 기사를 대동하고 장릉산 일대뿐만 아니라 금정산까지 올라가서 '시민안전'을 중심으로 인근지역 군사시설의 문제점을 비판한 적이 있다. 하지만 전국 공중파 방송을 탔음에도 그 후 어떤 개선이 이뤄졌는지 나는 들은 바가 없다.

 

예전에 장릉산 미사일기지 이전 범 시민대책위가 꾸려진다기에 고개를 갸우뚱 한 적이 있다. 통일까지는 아니더라도 한강하구에 평화적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는 한 장릉산 기지는 이전이 불가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보더라도 금방 알 수 있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운동을 주도한다는 분들의 면면이 안보를 중시한다는 한나라당내 인사들이었기 때문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단체의 대표 두 분이 지난 지방선거 때 한나라당 공천을 받았고 그중 한분은 시의회 재선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나는 이 두 분 뿐 아니라 그 당시 운동에 참가했던 분들에게 묻고 싶다. 여전히 지금도 미사일 기지 이전운동을 하고 있는지, 아님 지금은 중단했는지. 그때는 어떤 실현가능한 방도를 갖고 있었기에 그런 무모한 운동을 시민운동이라는 이름을 붙여 선거직전 결행했는지.

 

이 사안을 거론하는 것은 다른 생각에서가 아니다. 연평도 사태에 직면하여 소위 그간 보수를 자처해오던 사람들이나 언론의 행태에서 느껴지는 실사구시 태도와 가치철학의 빈곤함이 느껴져서다. 대통령, 여당대표, 국무총리, 국정원장등 핵심 라인이 한결같이 군 면제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거론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소위 보온병 포탄발언으로 독일에까지 유명해진 여당대표의 모습을 또다시 재론하고 싶지 않다.

 

안보는 실사구시적 태도에서 이뤄져야 한다. 치밀한 상황분석과 위기관리능력의 리더십이 수반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런데 이번 연평도 사태에서 보듯이 안보라인의 대응태도는 형편  없었다. 외교, 국방, 정보라인 그 어디에서도 무게 있고 믿음직한 모습이 없이 상호 책임 떠넘기기에 바빴고, 청와대 지하벙커에 앉아있는 군 면제자들의 모습만 TV에 끊임없이 비쳐질 뿐이었다. 오로지 그들에게는 미 핵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가 구세주일 뿐이었고 합동군사 훈련이 끝나자마자 보기 좋게 FTA를 백악관에 진상했다. 그러면서도 집권세력은 보수언론과 방송을 통해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기에 여념이 없다.

 

이번 대응사태 부실의 핵심은 독자적 전시작전권 부재였다. 북한의 만행에 대한 독자적 판단권한과 대응 매뉴얼이 없다보니 허둥대다 당해버린 것이다. 그런데 참여정부 때 미국과 합의했던 전작권 반환 일정을 이명박 정부가 2012년에서 2015년으로 늦춰버린 것의 문제점은 보수언론과 방송 그 어디에서도 언급이 없었다. 기껏해야 교전수칙의 강화 등을 외칠 따름이지만 이것역시 작전권이 우리 손에 있지 않는 한 미국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 한 것이다. 경계태세인 진돗개를 아무리 높여봤자 (준)전시 상태를 말하는 데프콘3로 변하는 순간, 지휘권은 주한미군 사령관으로 넘어가는 상황이 바로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 당시 한미 연합사에서 비행기를 이용한 보복공격을 반대해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는 언론보도는 이와 관련된 많은 점을 시사한다.

 

참여정부 때 수립된 군 전력 현대화 계획은 육군중심의 군 전력을 해공군 중심의 첨단무기체계로 바꾸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이것을 송두리째 폐기해버리고 육군중심의 체제로 복귀해버렸다. 오죽했으면 연평도 사태 후 각 언론에서 현재의 국방부는 국방부가 아니라 '육방부'라 비꼬았을까?

 

다시 김포의 현실로 돌아가 보자, 장릉산 미사일 기지는 언젠가는 이전하거나 없어져야 한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럴 수 없을뿐더러 아예 불가능한 게 사실이다. 적어도 한강하구 평화협력지대에 합의한 10.4 선언의 이행정도는 수반되어야 거론이 가능한 현실이다. 지자체건 국가건 모든 정책에는 철학이 바탕에 깔려있어야 한다. 그래야 일관성 있는 로드맵이 나오고 시민들에게 신뢰를 주면서 동참을 유도할 수 있게 된다. 이와 함께 국가건 지방이건 리더들 또한 당연히 살신성인의 모범을 보여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나는 장릉산 미사일 기지만 보면 피가 끓는다. 장릉산에 겹쳐 연평도가 떠오르고 분단의 생채기로 신음하는 이 땅 한반도의 현실에 속이 뒤집어진다. 한강하구에 봄을 예고했던 10.4 선언이 휴지조각으로 변해버린 모습에 가슴이 답답하다. 노무현 당시의 동북아 균형자론은 오간데 없고 연평도를 요새화 한답시고 대만의 금문도를 벤치마킹하러 간다는 허황된 소리를 들으며 집권세력의 안보철학 부재와 무능력에 기가 차기만 하다.

 

장릉산 미사일기지 이전을 주장했던 대표 분들에게 묻고 싶다. 진정 당신들은 어떤 생각에서 이 주장을 펼쳤냐고. 아직도 그 주장이 유효하냐고. 만일 아직도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 더불어서 6.15 선언 및 10.4 합의사항 이행 등을 비롯한 한반도 평화운동에 함께 나서자고 감히 권유하고 싶다. 그분들에게 실사구시적 태도와 철학적 바탕이 없는 안보현안 주장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는 쓴소리를 함께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