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오후 귀가하는 아이들의 손에는 각각 화분이 한 개씩 들려 있습니다.
‘맥문동, 페페, 바위치’
화분 3남매가 오랫동안의 기숙사 생활을 마치고 잠시 귀가 길에 나선 것입니다.
한 학기동안, 교실의 창가에서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듣다가 방학을 맞이하여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이 친구 이름은 뭐니?” “바위치요” 의석이가 대답합니다.
“이 녀석은?” “페페요” 민창이가 대답했습니다.
“아빠, 나는 왜 안 물어봐?” “누리 것은 아빠가 사주어서 알고 있잖아?”
“치이, 그래도 물어봐 줘” “알았어, 누리 친구는 이름이 뭐야?” “응, 무늬 맥문동!”
“누가 제일 잘 키웠는지 견주어 보자. 자, 화분을 함께 모아봐.”
의석이, 민창이, 누리, 저마다 으쓱 거리며 자랑스럽게 화분을 내밉니다.
약간 불그스레한 각자의 얼굴에는 수줍은 기색도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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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별걸 다한다’
지난 봄, 학교 준비물로 화분을 가져오라는 학습 안내문을 보았을 때 그 취지가 짐작이 되면서도 좀 짜증이 났습니다. 귀찮아 하는 몸을 일으켜 아이 손을 붙잡고 나가 아파트 단지 앞에 있는 트럭에서 고른 것이 ‘무늬 맥문동’ 이었습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 방학을 앞두고 있는 지금, 그 녀석이 제 앞에 다시 나타났습니다.
그냥 챙겨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아이 손에 들려 보냈던 ‘꼬마 맥문동’이 제법 줄기를 축축 늘어 뜨린 성숙한 모습으로 몇 달이 지난 지금, 제 앞에 다시 나타난 것입니다.
화초를 가까이서 접하거나 키워 본 적이 없는 저에게는 이 녀석의 달라진 모습이 마냥 신기하기만 합니다.
“저희들이 물을 주고 보살펴 주었어요.” “방학이 끝나면 다시 학교로 가져 갈 거예요”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신이 나서 자랑을 늘어놓는 아이들의 모습에는 어느덧 ‘생명에 대한 소중함’이 잔뜩 배어 있었습니다.
‘화분 3남매’
이 녀석들이 바뀐 주거환경에 잘 적응하길 빌면서, 집으로 들어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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