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야.
너 내가 누군지 아니?
나는 너를 한시도 잊은적 없는데 너는 나를 잊은지 무척이나 오래된 것 같다. 그간 세월이 참 많이 흘렀구나.
내가 너를 잉태하여 이곳 들녘에 내놓은지 수천, 수만년.
사람들이 하나 둘씩 여기를 찾아 정착하여 고기를 잡고 토기를 굽고 농토를 개간하면서 풍요를 노래하더니 언젠가부터 이곳을 놓고 서로 싸움을 시작하더구나.
성을 쌓고 경계를 긋고 담장을 쌓고 화살이 날아다니고...
시간이 지나면서 총탄이 날아들고 포연이 자욱해지고.. 성조기와 삼색기를 나부끼는 외국군함들도 드나들고....그리고 수십년전부터는 철책이 둘러쳐지고 애기봉에 이상한 철탑의 트리가 켜졌다 꺼지더니 다시 켜지고...잠자리를 뒤흔들던 확성기소리는 그쳤지만 그것도 언제 다시 켜질지...
김포야...
사람들은 나에게 한강하구, 혹은 조강이란 이름을 붙여줬더구나.
참 이상하다.
나는 강물이고 자연의 일부 그 자체라서 굳이 이름을 붙일 필요도 없는데 왜 사람들은 한강이니 조강이니 이름을 붙여놓고 자기들끼리 싸우는지...
그래도 나에게 그런 이름을 붙인 사람들은 생각있는 사람들인 것 같더라.
한강, 혹은 조강이란 이름속에 담겨있는 뜻이 커다랗게 하나로 아우르는 할아버지 할머니 겨레의 강이라는 뜻이니 말이야.
하지만 그러면 뭐하노?
나에게 이런 이름 붙여놓고 자기들끼리는 만날 싸우고 으르렁대고 죽이고 원수처럼 대하니 말이야....
김포야.
너는 나를 어미라고 생각하니?
시인들은 특유의 직관력으로 김포들녘 너른벌판을 한강하구가 잉태한 자식이라고 표현하던데 너도 그렇게 생각하니?
김포야.
그래도 한강하구 물결에 몸을 싣고 수많은 배들이 물살을 가르며 마포나루를 오갈때는, 개성에 소풍가고 나들이가고, 조강나루 주막에 뱃꾼들의 걸쭉한 입담이 막걸리 내음에 실려 퍼져올 때는 넉넉하고 훈훈했는데...
언젠가부터 철망이 쳐지고 마을이 없어지고 뱃꾼들의 발길이 끊기고 적막강산 그 자체로 변하더구나. 사람들은 나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지도에는 금단의 지역으로 선을 그어버린 채 이쪽 저쪽으로 나뉘어 으르렁대니....
그런데 김포야. 내가 이보다 더욱 가슴아픈 것은 무엇인지 아니?
세상의 그 누구가 그런다 해도 너만은 나를 잊어서는 안되는데...너는 어느순간부터 나를 기억속에서 지우려 애쓰더구나. 너는 분명 한강하구의 자식인데. 너는 분명 내가 잉태한 자식인데. 너 역시 다른이들 처럼 서울을 그리워하고 아파트숲을 그리워하고 물질의 욕망으로 치장하기 바쁘기만 하니...
김포야.
잊는게 길어지면 잃어버리게 된다는거 아니?
자식이 어미를 기억속에서 지워버리면 결국에는 어미마저 잃어버린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겠지?
다행히 오늘 열리는 오작교 행사가 나에게 한가닥 위안을 주는구나.
민통선안에 까지 들어와 적막하기만한 용강리 벌판에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하나됨을 노래하니 나의 두 뺨에 눈물이 흐르는구나.
그래. 오랜만에 눈물을 흘려본다. 슬픔이 깊어 눈물마저 말라버린지 수십년인데 사람들이 오늘 나의 가슴에서 눈물을 퍼올리는구나.
누가 오늘 잔치에 오작교란 이름을 붙였을까?
오작교는 슬픔의 상징이란다. 한의 표현이자 눈물의 다리란다.
그러나 우리가 놓는 오작교는 기쁨의 다리, 행복의 다리, 평화의 다리가 되어야 한다. 나 한강하구를 얼마든지 밟고가도 되니 애기봉과 문수산을 출발하여 유도를 딛고 한걸음에 개성과 해주 평양, 백두까지 돌아나오는 남북이 함께 손 맞잡은 통일의 다리가 되어야 한다. 그간 사람들에게 숱하게 베이고 할퀸 상처가 깊어 나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그대들이 통일 오작교를 놓는다면 나 한강하구는 얼마든지 나의 품을 내어주련다.
왜 굳이 그렇게까지 자신을 희생해야 하냐구?
김포야. 어미가 자식앞에 이해타산을 따지는 경우를 봤니?
너는 잊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너를 한시도 잊은적이 없단다. 왜냐구?
너는 내가 잉태한 자식이니까 말이다.
뭐라구?
이미 오작교는 놓여졌다구?
그것도 두 개씩이나 이름까지 붙여서?
6.15 오작교, 10.4 오작교가 그것의 이름이라구?
그렇구나. 나만 아직 몰랐구나.
하지만 다리만 놓으면 뭐하니? 아직 제대로 건너는 것을 보지 못했는데.
김포야.
그래도 희망이 보인다. 위안이 된다.
6.15가 첫 번째 오작교였다면, 10.4가 두 번째 오작교였다면 이제 세 번째 오작교는 조강리 오작교, 용강리 오작교, 유도 오작교라 풍성하게 붙여보자꾸나.
굳이 평화를 말하지 않아도 되는 행복한 세상.
아니 아예 평화라는 단어가 사라지는 세상.
오로지 한강하구가 다시 흐르고 흘러 밀물과 썰물이 어우러지는 것처럼 겨레가 하나되고 세상이 하나되는 그날에 이곳 용강리에 다시모여 용연못의 물로 빚은 막걸리를 연못물이 마를때까지 취하도록 마셔보자꾸나.
어떤 이는 말하기를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는다고 했단다.
그래! 나 한강하구는 너희들에 대한 사랑을 포기한 적이 없단다.
\나를 잊지마렴.
나를 잊는다는 것은 나를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나를 기억하렴
나를 기억한다는 것은 언젠가는 나와 함께 하나가 된다는 것이란다.
하루빨리 그날이 오기를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친다
2011년 8월 20일.
분단 66주년을 맞아
김포들녘의 영원한 어머니 한강하구가 나의 자식 김포에게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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