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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봉을 오르고 싶습니다. -6.15 12주년 기념 오작교 예술제 낭송 글

김포대두 정왕룡 2012. 6. 16. 10:34

애기봉을 오르고 싶습니다.

 

애기봉을 오르고 싶습니다.

자동차에 몸을 실어 오르는게 아닌 나의 두발로 직접 걸어 오르고 싶습니다.

걸어 오르며 눈앞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한강하구와 숨바꼭질 놀이를 하고 싶습니다.

어떤 날엔 연인의 손을 꼬옥잡고 함께 오르다 신록이 우거진 짙은 그늘 아래서

사람들의 눈을 피해 진한 키스를 나누고도 싶습니다.

 

애기봉을 오르고 싶습니다.

군 검문소에 신고를 하고 허락을 받아서 오르는게 아닌.

언제 어느때든 신분증이 필요없이 그냥 자유롭게 오르고 싶습니다.

 

애기봉을 오르고 싶습니다.

낮이 아닌 저녁에도 친구와 손잡고 오르며 동산 곳곳에서 술래잡기 놀이를 하고 싶습니다.

‘못찾겠다 꾀꼬리’를 외치기도 하고

어스름 석양에 한강하구의 붉은 노을을 보며 감격에 겨워 눈시울을 붉히고도 싶습니다.

 

애기봉을 오르고 싶습니다.

칠흑같은 한밤중에 야간산행을 하면서 풀벌레 울음소리 벗삼아 쐬주한잔 기울이고

조강나루 주막에 울펴 퍼졌을 뱃꾼들의 질펀한 삶의 노래를 상상해보고 싶습니다.

 

애기봉을 오르고 싶습니다.

정월 대보름날 이곳에서 달맞이를 하며 소원을 빌고 싶습니다.

산아래 마을 곳곳 논두렁 밭두렁에서는 쥐불놀이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산봉우리에서는 아이들과 함께 깡통에 불을담아 돌리며

어릴적 추억의 주인공이 되고 싶습니다.

 

애기봉을 오르고 싶습니다.

점등탑에 불을 켠다고 요란떠는 소리도 없고,

전망대 같은 인공시설물도 없는, 그리고 총을 든 군인들의 모습도 없는

자연 그대로의 애기봉 위에 서서 발아래 조강을 향해

종이 비행기를 접어 날려 보내고 싶습니다.

 

애기봉을 오르고 싶습니다.

그곳을 오르내리며 만난 사람들에게

쑥갓머리산이라는 상큼하고 쌉쌀한 원래의 이름도 함께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

 

애기봉을 오르고 싶습니다.

왼편 내리막길에 민간인 출입금지 구역이란 팻말을 떼어놓고

조강포로 당당히 걸어서 내려가고 싶습니다.

그곳에서 토정 이지함의 발자취를 더듬고

뱃꾼들의 노젖는 소리를 상상하며 막걸리 한사발 들이키고 싶습니다.

 

애기봉을 오르고 싶습니다.

그곳에서 한강하구에 배가 오르내리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조강 나루에서 개성으로 나들이 가는 사람들의 행렬을 보고 싶습니다.

주막이 있었다던 유도를 바라보며 한강하구 종착점에서 가뿐 숨을 몰아쉬며 서해로 나가려는 뭇 물결들의 머나먼 여정을 위로해주고 싶습니다.

 

애기봉을 오르고 싶습니다.

그곳에서 한강하구 철책이 걷힌 조강의 풍경을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산아래 강변으로 내려가 강물에 발을 담그고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는 동요를 부르고 싶습니다.

유도를 바라보며 섬집아기를 불러보고 싶습니다.

갯바위에 걸터앉아 바위섬 노래도 불러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종이배에 사연을 적어 조강 물결에 띄워 보내고도 싶습니다.

 

나는 오늘 애기봉에 올라 이 모든 꿈을 빌어봅니다.

하지만 이 모든 나의 바램은 여전히 꿈에 불과합니다

그러기에 나는 애기봉에 올랐어도 오른게 아닙니다.

훗날 언젠가 나의 꿈이 현실로 이뤄지는 날.

 

애기봉에 올라 늦봄 문익환의 ‘꿈을 비는 마음’ 시 한수를 종이에 적어

조강에 띄워 보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