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및 논평

정진석과 단두대 -명·문칼럼(16)

김포대두 정왕룡 2022. 10. 13. 13:56
*만일 정진석이 프랑스 혁명과정에서 정치를 했더라면?
-예상 답: 여지없이 단두대에 올랐을 것이다.
 
*만일 정진석이 2차대전 당시 프랑스의 정치인이었다면?
-예상 답: 나찌에 협력한 비시정부하에서 각료를 했을 것이다.

 

*만일 정진석이 2차대전 종전 후 드골집권 시대에 살았다면?
- 2차대전 나찌 부역자를 다룬 법정 심판대에 섰을 것이다.
 
*만일 정진석이 프랑스에서 지금 정치를 하려 한다면?
- 국회의원을 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친일 부역을 한 정진석의 조부, 군사독재 정권아래서 호의호식한 정진석의 아버지의 후광으로 정치권에 진입하는 유사사례가 프랑스에서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 만일 정진석이 프랑스에서 정당 가입을 하려한다면?
- 마땅한 정당이 없었을 것으로 예상. 최소한 프랑스 극우정당은 나찌와 협력 운운하지는 않음 (이것이 친일 경향을 보이는 한국 보수자처 세력과의 근본적 차이점)
 
 
정진석의 발언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밀려든다.
정진석의 발언을 대하면서 왜 프랑스 생각이 났을까?
내가 프랑스에 부러운 것은 딱 한가지다.
2차대전 종전 후 친나치 부역자들에 대해서 역사의 이름으로 준엄한 심판을 했다는 사실 하나다.
 
프랑스가 자랑하는 대혁명의 이념과 정신도 자신들이 저지른 제국주의 만행 앞에서는 색이 바래진다. 히틀러에게 당했던 참혹한 2차대전 패배를 회복하자마자 곧바로 인도차이나와 알제리에서 보여줬던 제국주의 만행은 그들이 부르짖는 자유평등 박애가 얼마나 이중적인지 잘 보여준다.
 
그럼에도 2차대전 종전 후 드골 중심으로 단행했던 나찌 부역자에 대한 심판은 단호했다. 1차대전 구국의 영웅으로 칭송받던 ‘폐탱’도 ‘종신형’에 처해져 심판의 칼날을 피해가지 못했을 정도다.
 
정진석의 글은 역사관의 부재, 몰역사적 가치판단은 물론이고 동일 글 안에서 한 두 가지 논리적 모순을 담고 있는게 아니다. 이에 관해서는 여러 전문가들이 이미 짚었기에 중복거론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꼭 한마디 하고 싶은 말.
정진석, 그 입으로 다시는 ‘동학’과 ‘우금치 전투’를 거론하지 말라. 당신 입으로 ‘10만명의 농민군’이 일본의 총칼앞에 쓰러진 곳이 우금치 전투라고 했 다. 조선관군 조차 일본과 한편이 되어 농민군을 탄압할 때 ‘반외세 반봉건’의 기치아래 처절하게 싸운 곳이 우금치 고갯마루다. 이게 전쟁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비록 프랑스 혁명당시의 단두대는 아니라 하더라도 정진석, 그를 21세기 대한민국 역사의 단두대에 세워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