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뭔 재미로 사나?***
김형.
나 정의원일세. 아까 만나서 저녁도 못하고 그냥 무덤덤하게 헤어져 미안하기만 하네.
그러게 나같이 술 한잔 못하고 담배도 안피는 쑥맥같은 사람하고 사귈때는 고정관념을 떨쳐버려야 한다니깐......
술한잔만 했다하면 얼굴이 뻐얼개지고 취기로 헤롱거리는 내가 김포시의회 진입후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도 ‘술문화’였던거 아나? 특히 공무원들의 폭탄주나 술잔 돌리기 관행은 진짜 적응하기 힘들었다네. 그럼에도 초반부터 튀면 안되겠다 싶어 이를 악물고 몇 번은 버티었는데 더 이상 안되겠더라구....
급기야는 보건소 업무보고 받을때 ‘김포시청 공무원 음주문화 개선책’을 마련해 다음 회의때 보고하라, 안그러면 행정사무감사 목록에 올리겠다고 했더니 보건소장님, 그후부터는 나를 볼때마다 인사구호가 ‘절주’로 바뀌더구만.
‘돌리는 술잔, 위험한 생명’
보건소 명의로 김포시내 곳곳에 요즘 나붙고 있는 현수막 본적 있나? 그후로 나타나고 있는 자그마한 변화라네. 그러한 내게 ‘술도 못하는 싸나이’라며 혀를 끌끌차니 이거 어쩐담?
김형.
이제 우리 다섯 번 정도 만났나? 'HID'하면 실미도의 주인공이라고만 알았지 정작 당신같이 나와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네. 가끔 시청을 오고갈 때 컨테이너 박스에 새겨져 있는 ‘북파공작원 동지회’라는 명칭을 보면서 약간의 긴장감을 느끼기도 했구.... 그런데 시의원들과 간담회겸 식사자리에서 우연히 내옆에 앉아 통성명을 하다보니 같은 동년배임을 확인한 뒤 말을 놓게 되었지만 아직도 약간은 어색한게 사실이네.
이런 나에게 자네가 먼저 스스럼 없이 다가와 친구로 대해주니 고맙기도 하다네.
‘남들이 못하는 것을 우리는 할수 있지만 남들이 쉽게 잘하는 것을 우리는 하지 못한다’
첫만남때 지나가는 말로 자네가 툭 던진 말이 생각나네. 첫날 그 만남의 자리에서 굳이 무거운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각종 지역 봉사활동에 앞장서는 HID 동지회 사람들의 모습속에서 분단의 상처가 조금씩 가셔지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면 나의 오버일려나?
이제는 음지의 존재가 아니라 당당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고 지역사회의 한 영역을 떠받치는 기둥역할을 하는 자네 동료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네.
전에 만났을때 내가 그랬던가?
“어찌보면 자네들이 이렇게 세상밖으로 나와 당당히 활동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민주화 운동, 혹은 인권운동, 혹은 통일운동을 했던 사람들의 역할이 일정정도 작용하고 있다고... 그리고 나 역시 자그맣게 그 한부분을 맡았던 사람으로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자네에게 나를 과시하려 했던 것은 아닌거 알지?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월남파병 고엽제 병사들이나 자네들 같은 사람들의 권익을 부각시키며 조금씩 사회의 발전을 위해 애써왔던 사람들을 오히려 그 당사자들이 빨간물이 든 적대세력으로 규정해버리는 안타까운 현실’을 이야기 했던 거 기억나나?
자네들에게 너무 무거운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닌지 모르지만, 혹은 책 몇줄 읽었다고 유식한 체 한 것은 아닌지 모르지만 자네나 나나 분단된 이땅의 상황에서 소중한 젊음의 시기를 굴절되게 살아왔던 것은 공통된 면이 아닌가 생각이 드네. 그런 면에서 이념의 터널을 빠져나와, 있는 그대로 사람의 훈훈한 정을 함께 느끼고 밝은 세상을 위해 서로 손을 맞잡아 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그러네.
김형. 아까 자네가 했던 말이 다시 떠오르네.
“술도 못하고 담배도 못피우고, 보아하니 바람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노는 문화에 익숙한 것도 아니고....도대체 뭔 재미로 사남?”
이 말을 들으며 그냥 빙그레 웃는 나에게 언제 노는게 이렇다는 것을 실감나게 보여주겠다고 날짜 잡으라고 했던가?
나는 여전히 쑥맥이고 사춘기 감정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감상주의자고 생활이 단조로운 별볼일 없는 기초의원에 불과한 사람이라네. 하지만 나같이 박물관에나 가야 어울릴 사람도 한두사람 정도 김포시 의회에 있다면 그 자체도 나름대로 의미 있는 거 아닌감?
나이는 같더라도 그냥 동생처럼 너그럽게 이해해 주게나.
언제나 열려있는 내 사무실에 들를때는 그냥 동생일터에 들른 것처럼 편한 기분으로 와서 차한잔 하며 담소도 나누고.....
HID 식구들이 지역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모습,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네. 이제는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활동영역을 넓히려 생각하고 있는 점도 높이 평가하고 싶구... 가까운 시간에 HID 식구들이 성공적으로 사회정착을 이루어 예전의 상처를 완전히 딛고 일어서는 모습을 보고싶네.... 우리 그 날을 위해 서로 노력함세...
그날이 오면 못마시는 술이지만 나역시 맘껏 취해볼 생각이네. 우리 실컷 한번 마셔봄세...
오늘은 이만 줄이네. 안녕히...술 너무 마시지 말고 건강도 챙기길 바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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