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왜 군인들이 시민들에게 총을 쏘는거야?”
누리야.
‘화려한 휴가’를 보는 도중 한참 분위기에 몰입해있던 아빠에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툭 네가 던진말이 생각나는구나. 지난주 토요일 오전, 엄마 아빠와 함께 영화관에 들어설 때 아빠는 사실 염려가 되기도 했단다. 아직 초등학교 5학년인 누리에게 영화의 내용들이 혹시 충격적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해서 말이야.
하지만 영화를 마치고 나올때 아빠 손을 꼬옥 잡고 제법 담담한 표정으로 이것 저것 궁금한 것을 물어보던 너의 모습을 보며 아빠는 한편으론 안심이 되기도 했구나. 이제는 나라안팎의 일에 대해서 누리와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 모습을 보면서 든든하기도 했구.
‘시민들이 애국가 부를때 총을 쏘던 군인들의 모습’
‘눈이 안보이시는 할머니가 엉망이 된 아들의 시신을 어루만지며 <자기 아들이 아니다>고 흐느끼던 모습’
‘여자 주인공 언니가 <우리를 잊지말아 달라>며 시민들에게 호소하던 모습’
‘끝장면에 남자 주인공이 <우리는 폭도가 아니다>고 외치며 죽어가던 모습’
누리가 기억에 남는 거라며 이야기 했던 장면들이지?
아빠는, 아니 아빠와 같은 시대를 살아 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광주’라는 두 글자를 잊을 수 없단다. 단순히 지도책에 나오는 지명중의 하나라고만 할 수 없는 이 나라의 ‘십자가와 같은 도시’란다. 영화가 진행될 때 마다 중간중간에 눈물을 훔치는 아빠의 모습이 염려되었는지 아빠의 표정을 살피던 너의 모습이 생각나는구나. 그래도 누리 뒷좌석에 있던 아줌마처럼 소리내어 흐느껴 울지는 않았으니 아빠는 양호한 편인가?
“아빠, 군인들이 반드시 좋은 사람들이라고는 할 수 없네?”
“그렇다고 저 군인들을 일방적으로 나무랄 수만은 없어. 저들도 상관이 시키는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인 걸. 저들도 나름의 피해자라고 할수도 있어.”
“아빠, 아무리 그렇다 해도 사람을 죽이는 일이야.”
“.......”
아무리 명령에 따르는 일이라 해도 집단적으로 군인들이 ‘시민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눈다는 일이 너에게는 납득이 되지 않았던가 보구나. 그래 아빠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우리 주변에 어디 이것 뿐이겠니? 학살자 전두환의 아호를 딴 ‘일해 공원’이 버젓이 그의 고향 합천에 세워지고 그를 사랑한다는 ‘전사모’란 팬클럽에 수만명의 회원이 가입하는 세상, 군인들의 정치개입 시초를 만든 5. 16 쿠데타를, 그 주범의 딸이 대통령 후보로 나서서 토론회 석상에서 ‘구국의 혁명’이라 일컫는 세상, 일제시대엔 ‘천황폐하를 찬양’하고 전두환을 ‘구국의 지도자’로 떠받들던 조선일보란 신문이 아직도 영향력 1위인 세상, 앞으로 수천년간 자숙해도 충분치 않을 쿠데타 세력들이 ‘잃어버린 10년’ 운운하며 다시 권력을 찬탈하려 광분하는 이 세상을 아빠는 어찌 이해해야 할까?
누리야. 다수결의 원칙이란 말 학교에서 많이 배웠지? 하지만 다수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란다. 집단속에 휩쓸려 개인의 존재가 말살되어 버릴 때 벌어지는 비극을 우리는 역사속에서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아무리 상관의 명령이 그렇다 하더라도 부당한 명령에 항거할 수 있는 용기있는 군인들의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아빠의 과욕일까?
집단적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끊임없이 탐구하고 학습하면서 자기내면의 세계를 확장해 가는 개인들이 많은 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아닐까 아빠는 생각해본다.
누리야.
아빠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물어본다면 아빠는 어느 것을 이야기 할지 짐작하니? 물론 누리가 말했던 장면들도 당연히 포함되겠지만 아빠는 제일 끝에 결혼식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하구나. 죽어간 이들이 활짝 웃는 모습 사이로 혼자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던 신부의 모습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이 느껴졌기 때문일까? 아니 ‘슬픔’이란 단어 자체가 너무 우울한 것 같다.
‘책임, 사명, 과제’ 기타등등 적당한 말이 떠오르질 않는구나.
죽어간 이들의 당당함 앞에 살아남은, 앞으로 살아갈 이들이 감당해야 할 역사의 무게가 여전히 아빠를 짓누르는 것을 보면 ‘광주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란 말이 맞는 것 같다. 아무리 달력을 넘기고 넘겨도 우리에게는 여전히 5월은 계속되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이번에는 누리의 여름방학이 끝나기 전에 광주를 꼭 가봐야 할 것 같구나. 누리하고 영화관을 나오면서 약속을 해버렸으니..............
그래. ‘광주’라는 두 글자로 수십년을 뛰어넘는 대화를 아빠와 올 여름에 나누어보자꾸나.
‘우리를 잊지 말아달라’며 산화해 가셨던 광주영령들 앞에 고개 숙이며 아빠의 두눈가에 맺힌 이슬을 살며시 닦아본다.
<누리의 일기>
오늘은 화려한 휴가라는 영화를 봤다. 처음에는 제목만 보고 코믹인 줄 알았는데 영화는 좀 끔찍했다. 광주에서 일어난 실화를 영화로 한것인데 정말 끔찍했다. 막 ‘대한민국’하고 애국가 노래를 부르는데 갑자기 총을 쏘고 , 공수부대가 항복했다고 속이고 또 총을 쏘고, 아버지가 죽고....
이 영화는 한국인라면 봐야되는 그런 영화인 것 같다.
그리고 광주시민은 자기 가족을 지키려는 마음이 누구보다 더 강했던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에 남주인공이 ‘우리는 폭도가 아니야’라고 말하고 외칠때 정말 펑펑 울었다. 그래서 전두환이라는 사람이 너무 괘씸했다.(-_-)
그런데 그 영화는 실제의 반 정도밖에 표현하지 못했다고 한다. 영화도 이정도로 슬픈데 실제는 얼마나 슬플까? 이번 영화를 보고 인터넷에서 실재 동영상도 보았는데 거기서 공수부대가 다 싸우고 물청소로 피비린내 없애고, 5.18 일어난 일을 보니 정말 6.25 못지않게 끔찍한 것 같았다. 다시는 한국인끼리 그런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꼭 광주 한번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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