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및 논평

마이크를 잡는다는 것의 의미

김포대두 정왕룡 2007. 9. 18. 23:55
 

*마이크를 잡는다는 것의 의미*


“마이크를 드릴테니 잠시 발언 좀 하시겠어요?”

9월 16일, 오전 11시에 고촌 장곡에 있는 금란초등학교 동문체육대회 개회식에 참가하였습니다.

고촌지역은 아직도 농촌의 정서가 많이 남아있는 곳이라 운동회나 동문체육대회는 그야말로 잔치분위기입니다. 학생수가 점점 줄어들어 위기에 빠졌던 금란초가 ‘찾아가는 특성화 학교’로 지정되어 학구에 상관없이 학생을 모집하게 되어 다시 활기를 찾은지도 여러해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김포관내 행사에 다니다보면 정작 행사내용보다 내빈축사나 시상순서가 길어져 버려 취지가 훼손되는 일이 많은 것을 느낄수 있습니다. 본의 아니게 발언권유를 맡게되면 가급적 사양을 하고 부득이하게 발언을 하게 되더라도 1분내에 끝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금란초 동문체육대회 역시 발언을 권유받았으나 웃음과 함께 정중하게 사양을 했더니 사회자께서도 그 의미를 알겠다는 듯이 더 이상 권유를 안합니다.


행사장에서 발언 몇마디로서 주민들에게 얼굴을 내비치는 것의 의미가 크게 보이던 시대적 풍토가 점점 과거의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도 합니다.


오후1시에는 고촌 모델하우스 부근에서 열린 현대아파트 입주자 동호회 집회에 참가하였습니다. 수기중 정상개교문제로 교육청 및 시청과 대립하다가 요즘에는 고촌감리교회 주차장 이 확대되면서 주민복지시설 부지를 잠식한 건으로 주민측에서 시청을 상대로 법적소송을 제기한 상태입니다. 거기에다가 임시로 지정되어있던 수기중, 수기초 교명이 얼마전 신곡중. 신곡초로 바뀌면서 이 문제또한 주민들의 반발이 극심한 상태입니다. 교명선정 심의위원회에 참석하였던 제가 토론과정에서는 신곡초,중 교명선정에 신중을 기할 것을 주장하였다가 정작 표결에서는 변경에 찬성을 한 것을 밝혔더니 저에 대한 주민들 반응도 좋지않은 상태입니다. 그 경위와 과정, 그리고 저의 심경에 대해 장문의 설명글을 제 블로그에 올린적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집회현장을 지키는게 본분이라 여겨져 자리에 갔더니 몇몇 낯이 익은 주민들께서 인사를 하십니다.


“정의원님, 교명변경에 찬성표를 던지셨다면서요? 오늘은 마이크를 안드리겠습니다. 정치인들의 발언순서를 안잡을 것입니다.”


어디에 가서나 늘상 하던데로 집회현장의 모습을 담느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카메라를 눌러대는데 연단에서 사회를 진행하시던 부회장님이 제 이름을 거명하며 가슴을 콕 찌르는 발언을 마이크를 통해 던집니다. 약간 무안하기는 했지만 계속 사진을 찍은 후 길가한켠에 앉아 나름대로 잠시 생각에 잠겨보았습니다.


고촌현대 주민들 집회에 그간 여러번 참석했었지만 초반에는 연단에 나가 발언하는 것을 사양했었습니다. 괜시리 선거법 시비가 붙는 것도 껄끄러웠지만 시의원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달리 없는 상황에서 인기영합성 발언을 하는 것으로 제 모습이 비쳐지는게 싫었던 면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동료의원들이 함께 참여하면서 혼자만 티내는 것같아 타의원들 발언시 함께 마이크를 잡았던 적도 있었습니다.


입주자 동호회 부회장님께서 저에게 쏟아냈던 섭섭한 감정이야 십분 이해하지만 마치 제가 발언기회를 얻기위해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마냥 일방적으로 규정되어 버린 것 같아 섭섭한 마음이 밀려왔습니다. 대학시절 지겹도록 잡아보았던 마이크란 존재가 그날 집회현장에서 나의 얼굴을 빨개지게 만드는 도구로 쓰일줄은 몰랐습니다.


어제 월요일엔 고촌 상공인회 월례모임에 참석하였습니다.

회의순서가 끝나고 식사도중에 여기저기 술잔이 오가는데 신임총무님께서 저에게 건배제의를 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선천적 체질상 술과 별로 친하지 못한 제가 술자리에 앉아있는 것도 대단한 노력을 요하는 일인데 수십명의 사장님들 앞에서 건배제의를 하라며 마이크를 넘겨주는데 가슴이 덜컥 거렸습니다.


<그토록 무덥던 여름이 다가고 선선한 가을이 다가왔습니다. 여기에 남성분들만 계시는데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합니다. 풍요로운 계절이지만, 사람들 마음 한켠에는 가을 타는 남자들의 외로움이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란 노래에 실려 느껴져 오는 때이기도 합니다. 사장님들 마음속 계절의 쓸쓸함은 묻어버리시고, 기쁨과 행복을 함께하는 의미로 ‘남자의 계절 가을, 낭만을 위하여!’로 건배를 제의하겠습니다.  ‘남자의 계절 가을, 낭만을 위하여!>


그냥 생각나는데로 주절거렸는데 갑자기 여기저기서 ‘낭만을 위하여!’란 건배함성이 박수소리와 함께 쏟아져 나옵니다.


“야! 이런 건배사는 처음 들어보는데? 멋지다! 멋져!”

“정의원 말솜씨 언제 이렇게 늘었어? 술도 함께 늘었으면 좋으련만!”

함께 동석하셨던 박현진 경제과장님등 몇몇분이 옆에서 추임새를 넣습니다.


대학시절, 집회현장마다 그렇게도 많이 잡아보았던 마이크였습니다.

입시학원가를 십년넘게 뛰어다니며 한손에는 분필, 그리고 다른 한손에는 역시 마이크를 놓지 않았습니다. 이 학원 저 학원 이동할 때 가방에 꼭 챙겨갖고 다니는게 마이크였습니다. 그런데 선거과정을 거쳐 시의원 당선이후 다시 마이크란 존재는 내 앞에서 지겹게 버티고 서 있습니다. 행사현장은 말할 것도 없고 의회 특위장이나 본회의장에서 마이크는 필수적인 존재입니다.


대학시절엔 핏발선 목소리로 격정을 쏟아내던 도구로, 학원강사 시절엔 제1의 생계도구로, 그리고 시의원 당선된 후에는 의정활동의 도구로 내곁을 지겹도록 따라다니는 친구가 바로 이 녀석인 것 같습니다.

언제까지 저 지겨운 친구가 내곁을 따라다닐지는 모르겠으나  이것도 운명적 인연이라면 그냥 담담히  반려자처럼 손맞잡고 지내볼까 합니다.


굳이 목소리를 높힐 이유가 없는, 그래서 마이크가 필요없는 세상이 오면은 그때는 마이크, 이 친구와 이별해야겠죠. 그때는 아쉽지만 편한 마음으로 이 친구를 떠나보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