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이라는 선물을 안겨준 하성면 골말 미술관 개관식 *
“정의원님, 초대장 받으셨죠? 오늘 행사에 오시는지 확인여부차 전화드렸습니다.”
“전달과정에 문제가 있었나봅니다. 받진 못했지만 이렇게 전화까지 주시니 안가 볼 수 없군요.”
10월 25일 오전, 최문수 김포미협 회장님의 전화를 받고 지역신문의 관련기사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마을 담벼락이 해바라기로 보이는 노란색 꽃으로 화가의 손에 의해 다시 태어나는 사진도 기억이 났습니다. ‘골말’이라는 마을이름도 정감이 어리거니와 여기에 마을전체를 갤러리화한 야외 미술관을 만들었다니 안그래도 호기심이 일었던 차에 초대전화를 받으니 겹치는 일정을 조정하여 길을 나섰습니다. 막상 길을 찾아가보니 같이 동승하였던 김포뉴스 강재석 국장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직 저같이 김포쑥맥인 사람은 찾아갈 수 없을 정도로 굽이굽이 어려운 길이었습니다.
어렵게 도착해보니 한강하구변 인근에 야트막한 야산주변으로 널따란 들녘이 펼쳐진 전형적인 옛김포의 풍경을 담아낸 마을이었습니다. 머리위로는 수많은 철새가 한강변을 오가며 자신들의 존재를 과시하고 있었습니다.
마을입구에 들어서면서 우선 가장 눈에 띠는 것은 곳곳에 우뚝 서있는 깃발들이었습니다. 지난 일요일 월곶면 성동리 마을축제 때에도 깃발작품들이 마을입구에 서있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차에서 내려서서 먼저 와 계시던 분들과 인사를 나누었고 전화를 주셨던 최문수 미협회장님, 권운택 김포예총 회장님에게도 인사를 드렸습니다.
‘야! 진짜 따뜻하다!’
행사 시작전에 골말마을 야외 미술관을 둘러보면서 느꼈던 소감을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바로 이 말일 것입니다. 농토한복판에 설치된 팔랑개비들, 담벼락이나 화장실벽, 주택, 마을회관등 주변에 그려진 벽화들, 걸개그림들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낸 듯 친근감을 담뿍 안겨주었습니다.
“우리 바깥양반 사진인데 이렇게 잘 나올 줄은 몰랐네”
할머니 두 분께서 길 곳곳에 걸려있는 인물사진들을 보면서 신기하다는 듯 대화를 나누고 계시기에 다가가 보았습니다.
“할아버지 참 잘생기겼죠? 할머니?”
“응, 그런 것 같아. 근데 옷좀 잘 차려입었을때 찍지 장화신고 농사일 하러 나가는데 그때와서 하다보니 이 양반이 준비를 별로 못했어. 그래도 보기좋아. 전시회 끝나면 나눠준다니 액자에 넣어 집에 걸어둬야제”
“할머니는 안찍으셨어요?”
“사진 선생이 갑자기 와서 마을 곳곳을 하루종일 돌아다니며 일하는 모습을 찍었어. 그때는 내가 마실 나가느라 없었거든”
사진속 주인공이 될 기회를 놓쳐버린 할머니의 얼굴표정에는 아쉬움이 스쳐갔습니다.
할머니들은 사진 하나하나를 둘러보며 그 속에 담긴 마을사람들의 이야기로 시간가는 줄 모르십니다. 이야기 흥을 깨뜨릴 것 같아 인사도 못드리고 조용히 그 자리를 비켜섰습니다.
할머니의 바램대로 액자에 넣기에는 사진의 크기가 너무 커보였습니다. 하지만 그게 뭐 대수랴 싶었습니다. 이미 할머니 마음에는 수십년간 같이 살아오신 할아버지의 영상이 한몸이 되어있을테니 말입니다. 아마도 할머니는 실물사진보다 자신의 마음을 담아두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간 미술전시관 하면 조심스럽고 긴장되고 엄숙해야만 하는 장소였습니다. 이러한 엄숙주의를 깨뜨리고 야외로 나와 마을 분들과 함께 하고자 한 것이 이번 행사의 취지였습니다. 작가 개인의 미적 완성도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는 공공예술의 공간을 만들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앞으로도 저희는 매년 한개 마을씩 돌아가면서 이러한 시도를 해볼 것입니다.”
최문수 회장님의 길지않은 인사말에서 느껴지는 열정과 힘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행사가 시작되자 마을 분들이 여기저기에서 모여드셨습니다. 아마도 마을이 탄생한 이래 바깥손님들 수십명이 이렇게 한꺼번에 찾아온 적은 없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농사일하다 오신 분, 마실 나갔다가 돌아오시는 분, 음식장만하다 나오신 분, 그저 뭔가 흥겨운 일이 있나보다 하는 생각에 바둑이와 함께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꼬마 아이들.......
행사의 주인공은 내빈석에 앉아있던 저같은 사람들이 아니라 마을주민들, 바로 이 분들이었습니다. 끝까지 자리를 못지킨 아쉬움을 뒤로하며 마을을 떠나올 때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골말 미술관에 관람차 찾아와서 ‘고향’이라는 선물을 받아안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참으로 훈훈했습니다. 김포 곳곳에 고향의 정취를 담은채 힘겹게 버티고 있는 골말과 같은 마을들이 온전히 제모습을 유지하길 기대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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