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및 논평

한강하구에서 남과 북 하나되어 만나리

김포대두 정왕룡 2007. 10. 30. 05:58
 

*한강하구에서 남과 북 하나되어 만나리*


“사랑하는 개풍군 형제들이여. 우리는 염원합니다. 우리 김포시장님과 개풍군 인민위원장님이 나란히 조강나루터 나룻배에 올라앉아 함께 잘 살아보자고 형제애를 나누는 모습을 그려봅니다.”


10월 28일 김포시 애기봉에서 열린 ‘서해평화특구 성공을 기원하는 민간인 평화선언 및 제3회 찾아가는 시 낭송회’에서 김포시민 이윤정씨가 낭독한 ‘김포시민의 개성시·개풍군 주민에게 보내는 편지’의 한 구절입니다.


강건너 바로 북한 개풍군이 내려다보이는 김포시 애기봉에서 열린 ‘통일염원 시낭송회’는 가을비가 오락가락하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모여든 이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특히 91세라는 노구를 이끌고 애기봉 가파른 계단을 올라오신 이기형 선생님의 한마디 한마디는 심장을 찌르는 송곳이 되어 민족의 혼을 일깨웠습니다.


해방직후 신문사 기자도 하시고 몽양 여운형 선생을 모시던 비서역할도 하셨다는 선생께서는 해방직후의 정세를 설명하시며 어떻게 친일민족 반역자들이 애국인사를 학살하고 권력을 움켜쥐었는지 목에 힘주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소위 포스트 모더니즘이라 불리우는 풍조가 시단에서도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경향의 치명적 결함은 현장성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민족의 통일문제를 외면하는 시는 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통일을 논하는 시만이 오로지 시라고 말할 수 있다. 요즘들어 조중동은 물론이고 한겨레마저 국보법등 통일의 근본문제에 대한 진단을 외면하고 있다. 해방직후 분단과정을 겪으며 무려 3백만명이 희생되었다. 희생자는 있는데 학살자에 대해선 규명이 제대로 안되고 있다. 학살자가  누구인가? 바로 친일 반민족자들이 아닌가? 해방된 직후 그들은 우익의 그늘아래 기어들어갔다.

 

애국자들을 빨갱이로 규정하고 탄압했다. 흔히들 해방직후 정국을 좌.우익 대립으로 설명하는데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시각이다. 우익을 가장한 친일 민족반역자들과 애국인사들간의 대결이었고 이 과정에서 3백만명에 이르는 민중이 희생된 것이다. 나는 이 말을 증언하기 위해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다. 내가 하는 이 말이 거짓이라면 나는 역사앞에 죄인이 될 것이다. ”

 

91세의 노구에도 불구하고 꼿꼿한 자세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안경도 안쓰신 채 온몸으로 열변을 토하시는 선생의 모습에서 초지일관 민족사랑의 길을 걸어가는 이의 숭고함이 다가왔습니다.


연이어 ▲김창규 시인의 ‘서해 북방한계선’ ▲김이하 시인의 ‘먼길을 돌아온 사랑은 눈부시다’ ▲이소리 시인의 ‘아, 한반도의 만행(卍行)이여’ ▲윤일균 시인의 ‘멍멍 왈왈 아니더라’ ▲유명선 시인의 ‘철마가 달린다’ ▲이적 시인의 ‘해주땅 누이에게’ 이기형 시인의 ‘서산낙일’ 등 자작시 낭송과 ▲조길성 시인의 ‘나는 살아있다’ ▲문익환 목사의 ‘나의 기도’ ▲이기형 시인의 ‘해연 날아오르다’의 대리낭송이 이어졌습니다.


특히 충북 영동에서 올라오신 조길성님께서 문익환 목사의 ‘나의 기도’를 암송낭독 할때는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하였습니다.  문목사님의 열정적인 삶이 노시인의 뜨거운 목소리를 통해 시어로 다시 부활하는 것이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어서 이윤정님이 ‘김포시민의 개성시·개풍군 주민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하고 행사에 참석한 모든 분들이 손을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름으로써 행사는 종료되었습니다.


저는 이날 행사중간에 ‘서해평화정착과 한강하구 개방및 복원을 촉구하는 김포시민 선언문’을 낭독하면서 한번도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바로 앞줄에 앉아계시는 통일일꾼 어르신들앞에서 통일에 관한 글을 읽어 내려간다는 사실에 마음이 떨려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지난 10월 17일 김포시민 104인 선언문 발표에 이어 ‘우리시대 시동호인’들과 함께 진행한 ‘애기봉 시낭송회’ 행사는 민족통일장정에 소중한 디딤돌이 될것이라 확신합니다.


비내리는 일요일 오후, 애기봉 정상에서 울려퍼진 통일의 노래가 한강하구 건너 북녘땅은 물론이고 세계 곳곳에 평화의 메아리로 울려퍼지길 기대해 봅니다. 이 행사를 위해 궂은 일을 도맡아가며 수고를 아끼지 않으신 이적 목사님과 채신덕님 조승현님에게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