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치환을 보며 김광석을 생각하다*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 생각나는 10월의 마지막 밤, 시민회관에서 여성가정과 주최로 안치환 초청 ‘가을밤 콘서트’가 열렸습니다. 가족단위로 나들이 나온 많은 시민들이 시민회관 실내체육관을 가득메워 안치환의 지명도와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저 역시 아이엄마, 딸아이와 함께 실내 체육관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오랜만에 흥에 젖어보았습니다.
약간 이름이 생소했지만 열창을 하셨던 가수 백성화님이 서두를 장식한 뒤에 무대위로 올라온 안치환을 소개할 때 사회자가 ‘존경하는 민중가수’로 그를 호칭하였습니다. 안치환을 대중가수로 널리 알리게 한 ‘내가 만일’로 시작된 그의 노래목록은 때로는 격정적으로, 때로는 서정적으로 실내체육관을 휘어잡으며 공연장의 시민들을 매료시켰습니다.
행사중간에 사회자께서 내빈들을 소개할 때 저를 ‘의장님’으로 호명하는 ‘유쾌한 실수’를 저지르는 바람에 잠시 멋쩍기도 하였습니다.
열정을 토해내는 무대매너와 노래 중간 중간에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는 멘트를 자연스럽게 날리며 청중과 소통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이제는 ‘프로 대중가수’라는 이름을 붙여도 모자람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80년대를 거치는 과정에서 노래운동을 표방하며 등장하였던 ‘노찾사’를 비롯한 여러 민중가수나 그룹들이 이제는 대중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고 추억의 한자락으로 기억되어가는 시점에서 안치환의 존재는 소중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최근 9집을 발간했다면서 그 중 한곡인 ‘담쟁이’를 부를 때는 여전히 자신의 색채를 잃지 않으려는 고뇌의 흔적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대중가수로서의 상업적 성공, 그리고 시대적 긴장감을 함께 유지해 가며 대중과 소통해 나간다는 것’
균형감을 이루기에 결코 쉽지않은 두 요소 사이, 허공 한가운데서 줄타기를 하는 것 같은 안치환의 모습이 웬지 고독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면서도 안치환의 존재가 상징하는 소중한 빛깔이 바래지지 않도록 끊임없는 도전속에 자신의 지평을 대중 속에서 계속 넓혀가길 바래보았습니다. 영화 ‘화려한 휴가’에 수백만의 관객이 몰림에도 시대정신의 영역은 보수화되어가고 후퇴하는 듯한 작금의 상황에서 안치환의 노래역시 ‘후일담을 회고하고 자극하는 영역’에만 머물러서는 안될 것이라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어쩌면 이 몫은 안치환 개인의 몫이 아니라 여전히 시대정신의 자락을 부여잡고 발버둥치는 우리같은 사람들이 함께 짊어져야 할 짐이기도 할 것입니다.
마무리곡으로 준비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에서 가장 가슴와 와닿는 부분,
‘지독한 외로움에 쩔쩔매본 사람은 알게되지, 그 슬픔에 굴하지 않고 비켜서지 않으며....짙푸른 숲이되고 산이되어 메아리로 남는다는 것을.....’
이 대목에서는 올라가지 않는 목소리임에도 안치환과 같이 따라 부르려 애쓰며 목청껏 소리도 질러보았습니다.
“아빠, 진짜 신나는가 보다.”
그순간 옆에 앉아 지켜보던 딸아이가 모처럼 발산하는 아빠모습이 신기하다는 듯 나지막히 중얼거리는 소리가 기억납니다.
“김광석도 저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면!”
공연장을 나오면서 들었던 생각인데 아이엄마가 똑같은 말을 먼저 하는 것을 보고 현장에서 많은 분들도 같은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는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김광석이 있었다면 어찌보면 안치환의 짐이 한결 가벼워지면서 자신의 색채에 더 몰두했을지도 모릅니다.
‘일어나’를 거듭 외쳤지만 정작 본인은 일어나지 못하고 먼저 가버린 김광석에게 이등병의 편지가 아니라 ‘가을날, 마음의 편지’를 띄워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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