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및 논평

[스크랩] 잠못 이루는 새벽에 씁니다.-김포대두

김포대두 정왕룡 2007. 12. 18. 05:29

*잠못 이루는 새벽에 씁니다.*



벌써 시계초침이 새벽 4시 19분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언젠가부터 잠 못 이루는 병이 생겼습니다. 저처럼 잠많은 사람에게 이런 습관이 생기리라곤 생각도 못 할일입니다. 대학시절 학생운동하던 친구가 저에게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네가 만일 안기부에 끌려가면 하루만 잠을 안재워도 다 불어버릴 녀석’이라며 친구에게 놀림을 받을 정도로 잠과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였는데............


‘과연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이 사회현실속에서 실재로 맞는 말일까? 변진섭의 노랫말처럼 단지 우리의 희망사항이 아닐까?’

안치환의 노래를 떠올릴 때마다 한번쯤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던져보는 질문입니다.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말이 과연 사실일까? 그냥 시인의 낭만적인 생각을 표현한 것은 아닐까?’

박노해 시인의 싯구절이 생각날 때마다 떠오르는 말이기도 합니다.


‘반칙이 통하지 않는 사회, 거짓말이 백배, 천배 응징을 받는 사회’

과연 이러한 말은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에만 존재해야 하는 말인지 도무지 헷갈리는 현실입니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제 자신이 품어왔고 추구해왔던 생각이 과연 맞는 말인지 회의에 빠져보기도 하고 좌절감에 젖어보기도 하는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지난날 꿈꾸었던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는 저의 꿈은 여전히 저 자신을 중독시키고 있음을 확인합니다.


어제는 사우 사거리에서 촛불을 들었습니다.

5년전 미선, 효순이를 미군장갑차에 떠나 보냈을 때 아이를 데리고 나가 그 자리에서 함께 촛불을 들었던 때가 생각납니다. 그때는 한참이나 어리게만 보였던 딸아이가 벌써 6학년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세월은 참 빠르기도 합니다.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제가 아이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다만 이와같은 사회를 만들어 스스로 경쟁할 수 있고 자기의 꿈을 키워나갈 수 있고 노력한 만큼 댓가를 받으면서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아빠가 자그마한 디딤돌을 만드는 것, 그게 제가 아이에게 물려 줄 수 있는 유일한 재산인 것 같습니다.


여전히 삶의 고단함과 싸우는 이땅의 수많은 아빠들 중의 한사람으로서 아이의 잠자는 얼굴을 바라볼 때마다 코끝이 찡해옵니다.


오늘 저녁에 저는 다시 촛불을 들러 사우사거리로 나갑니다.

어제 선거연설원으로 등록하여서 오늘은 마이크도 잡게 될 것 같습니다.


‘어둠을 저주하기보다 그 어둠을 밝히는 한자루의 촛불을 들자’

87년 대선과정에서 시민들에게 나누어드렸던 유인물의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이제는 빛바랜 과거의 기억 뒤편으로 사라져가는 80년대의 기억들이 다시 떠오르며 자꾸만 편안함에 젖어가려는 저의 모습을 꾸짖는 것 같습니다.


...........


이말 저말 주저리 주저리 읇어대다 보니 벌써 시간이 다섯시를 훌쩍 넘겨버렸군요.

12월 18일, 이제 새벽출정의 길을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정호승 시인의 ‘우리가 어느 별에서’를 옮겨 적어봅니다.

안치환의  노래로도 불리워진 이 싯구절처럼 ‘해뜨기 전에 새벽을 여는 사람’이 아직도 이땅에는 많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봅니다.



<우리가 어느 별에서>


우리가 어느 별에서 만났기에

이토록 서로 그리워하느냐

우리가 어느 별에서 그리워하였기에

이토록 서로 사랑하고 있느냐


사랑이 가난한 사람들이

등불을 들고 거리에 나가

풀은 시들고 꽃은 지는데


우리가 어느 별에서 헤어졌기에

이토록 서로 별빛마다 빛나느냐

우리가 어느 별에서 잠들었기에

이토록 새벽을 흔들어 깨우느냐


해 뜨기 전에

가장 추워하는 그대를 위하여

저문 바닷가에 홀로

사랑의 모닥불을 피우는 그대를 위하여


나는 오늘밤 어느 별에서

떠나기 위하여 머물고 있느냐

어느 별의 새벽길을 걷기 위하여

마음의 칼날 아래 떨고 있느냐

출처 : 풍무동사람들
글쓴이 : 김포대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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