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및 논평

다시 광야에 서는 심정으로....

김포대두 정왕룡 2007. 12. 24. 04:13
 

*다시 광야에 서는 심정으로....*


‘찢기는 가슴안고 사라졌던 이땅에 피울음 있다.................’

지금은 많은 사람의 애창곡이 된 ‘광야에서’를 처음 들었던 때가 87년 봄, 대학 노래패 공연자리였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노랫말에서 울려나오는 격정에 나도 모르게 두주먹을 불끈 쥐었던  일도 생각납니다. 그러고보니 그당시 대학가 노래패 동아리들이 공연할 때는 한결같이 두주먹 불끈쥐고 핏발선 눈동자로 어느 곳인가를 힘있게 응시하던 모습이 일상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광야’라는 단어가 마음속에 인식되었던 때는, 예수께서 40일 금식기도를 했던 장소가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릴적 이에관한 성경말씀을 들으면서 웬지 무시무시하고 소름끼치고 적막함으로 가득찬 장소로 기억에 새겨졌던 것 같습니다.


학창시절 국어책에서 접한 이육사의 ‘광야’는 생명탄생의 원초적 장소로 ‘광야’를 다시금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마귀가 사는 유혹의 장소가 아니라 백마타고 오는 초인과 역동적 만남을 이루는 장소가 바로 이육사의 광야였습니다.


대학시절 ‘광야에서’를 접하면서 노랫말 뜻보다는 그 분위기에 넘쳐나는 서정성과, 곡조에서 느껴지는 비장감에 나도 모르게 젖어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의 광야는 바로 삶의 현장, 투쟁의 거리를 의미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대선이 끝났습니다.

‘잃어버린 10년’을 줄기차게 외쳤던 사람들의 일방적 승리로 모든게 귀결되었습니다.


대선 다음날 있었던 김포시 학교운영협의회 송년회 자리에서 김상철 협의회장이 대회사를 하며 ‘대선승리’를 자축하는 장광설을 늘어놓길래 그 무례함을 못참아 자리를 박차고 나온 적이 있습니다. 지난 금요일에는 시의회 전.현직 의원들이 함께하는 ‘의정회’ 송년회가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여러 선배의원들이 저를 붙잡고 ‘빨갱이 정권 10년 종식’에 대해서 어떻게생각하냐고 직설적으로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당신의 의정활동은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당신이 몸담고 있는 당과 무리들은 알레르기가 일어날 정도로 싫다’고 말씀하시는 전직 선배의원도 있었습니다.


‘언제까지 그 무리에 몸을 담고 있을건가? 이제는 당신의 의지를 펼칠 수 있는 새로운 장이 필요하지 않나? 마음만 바꾸면 소개시켜 줄 사람은 얼마든지 있으니 진지하게 생각해보라’는 나름대로 진심어린 조언도 해주시는 분도 계십니다.


‘오늘은 말씀하시는 내용에 대해 경청만 하겠습니다.’

송년회 자리에서 전직 선배의원들이 묵묵히 듣기만 하는 저의 모습을 보며 의견을 말해보라 길래 웃으면서 제가 반복하여 드렸던 대답이었습니다.


지금 주변에서 수없이 난무하는 승리감의 분위기가 사실 따지고 보면 10년전과 5년전에 저역시 똑같이 느꼈던 것이고 보면 사실 그분들을 뭐라 할수 없다고 봅니다. 다만 그분들이 바라는 세상이 얼마나 제대로 이루어질지, 얼마 안가서 물거품이 되고 말 환상이 깨져나갔을 때 느껴질 정신적 공황을 어떻게 수습할지 염려가 될 뿐입니다.

 

‘광야’를 다시금 떠올려봅니다.

예수가 처절하게 마귀의 유혹과 싸우며 절대자와 대화를 나누었던 광야, 이육사가 그려냈던 광야,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일대전환이 되었던 87년의 광야는 지금도 여전히 내앞에 펼쳐져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2007년 12월은 그동안 잠시나마 잊을 뻔 했던 광야의 존재를 다시금 인식하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지금 제가 손에 들어야 하는 것은 정치풍향을 감지하기 위한 안테나가 아니라 광야로 나아가기 위한 지팡이인 것 같습니다. 비록 홍해를 가르는 모세의 지팡이가 아닐지라도 나의 몸 하나쯤은 지탱해주며 지평선을 향해 걸어가는 길동무가 될 그러한 존재 말입니다.


‘우리어찌 가난하리오. 우리어찌 주저하리오.

다시서는 저 들판에서 움켜쥔 뜨거운 흙이여~’


‘광야에서’ 노랫말 끝구절을 읊어 봅니다.

아직도 내 가슴에 용솟음치는 뜨거움이 남아있다는 것, 그것은 광야가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본향과도 같은 장소였음을 잊지말라는 목소리로 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