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크게 될 사람이............*
“좀 더 크게 될 사람이 그만한 일에 예민하게 반응하면 어떡하냐구!
그리고 당신 혼자 힘으로 이 사태를 감당해낼 수 있을 것 같아?”
지난 연말 모 단체 송년행사에서 지역원로 한 분이 저에게 던진 쓴소리입니다. 2007년 김포시 학운협 송년회 행사장에서 있었던 김상철 회장의 정치적 발언사태에 대한 저의 성명서 발표가 지역사회에 작지않은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좀 가볍게 처신했다’는 류의 쓴소리부터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던 부분에 대해 소신껏 할 만한 소리를 했다’는 격려성 말도 들려왔습니다.
저의 문제제기에 대해 판단할 내용은 각자 이 사태를 바라보는 분들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두고 두고 여운을 남기는 말들은 몇몇 분들의 말씀에 담긴‘좀 더 크게 될 사람이.......’라는 표현입니다.
성향을 떠나 그 분들의 발언에는 저를 진심으로 아껴주는 목소리가 담겨져있어 고마움이 느껴집니다. 좀 더 유연하고 대범하고 예의있게 행동하기를 바라는 주문도 거기에 담겨져 있음을 압니다.
“저는 프로가 아닌 걸요. 아직은 아마추어가 저에게 편한 모습인 것 같습니다.”위와같이 걱정하는 쓴소리를 해주신 분들 중 한 분에게 씩 웃으며 답변 드렸던 말이 생각납니다.
그분들이 말씀하시는 ‘좀 더 큰 일’이라는 게 무엇인지 저는 잘 모릅니다. 저는 현재 제가 하고 있는 일 조차도 감당하기에 벅찬 ‘최고의 큰 일’이기 때문입니다.
“정의원, 사람이란 말이에요. 모름지기 권력의지가 강해야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기 마련인거에요. 비전을 키워야 합니다. 이미 정의원은 지역정가의 한 축으로 올라섰어요. 이제는 모습이 좀 달라져야 합니다.”
지난 연말 제 사무실 방으로 찾아왔던 한 손님께서 저에게 했던 말도 떠오릅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저는 흐름따라 갈 뿐입니다. 정교하게 향후 행보를 그리면서 현재의 수순을 생각하는 모습은 제 체질에도 안맞습니다. 현재의 일을 감당하기에도 벅찬 게 저의 현실인걸요.”
그때 그 분에게 답변드렸던 내용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하셨던 예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그런데 ‘빛과 소금’이라는 이 두가지 역할은 진짜 대단하고 힘든 일입니다. 이 두가지 일을 동시에 하라 한다면 세상에 몇 사람이나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만일 누가 저에게 이 두 가지 중 어떤 일을 먼저 하고 싶냐고 물어본다면 저는 조심스럽게 ‘소금’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빛의 역할을 감당하기에는 내안의 모습이 너무 빈약할뿐더러 소금의 역할조차도 엄청나게 힘든 일이기 때문입니다.
모름지기 ‘소금’의 역할은 짠맛일 것입니다. 세상에서 소금의 역할을 한다는 것은 홍세화님의 책 제목처럼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을 감당해야 하는 일과 비슷할지도 모릅니다. 주변을 향해 ‘쓴소리’를 토해내고 상처를 아물게 하기는커녕 덧나게 할지도 모르는게 ‘소금의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어느 정도 되었다 싶으면 저마다 많은 사람들이 소금의 역할을 포기해 버리고 빛이 되기위해 행세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일에 조용히 스며들어 짠맛을 내기보다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기위해 달려나간 대표적 사례가 저는 ‘여의도 386들’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소금의 짠맛을 주문했던 민의와 다르게‘실용, 상생’이라는 이름으로 어줍짢게 뱃지달자 마자 대안세력으로 이미지 가꾸기에 정신없었던 친구들이 바로‘여의도 386’들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이들에 대한 평가는 소속 정당을 떠나 이번 총선에서 혹독하게 드러날 것이라 예상해봅니다.
이제는 역사속 한페이지로 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80년대 시대정신에 대한 기억이 원죄의식처럼 자리잡고 있는 이땅의 수많은 386들을 대표하는 상징체가 바로 이들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이들만은 빛이되기에 앞서 소금의 역할에 충실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이들의 성적표는 초라하기 그지 없습니다. 다가오는 총선에서 몇사람이나 살아남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들의 좌절은 시대정신의 좌절이라는 점에서 대선과는 다른 차원의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1월 2일 새벽에 유필선 김포 교육장님께 공개서한을 썼습니다. 김상철씨 발언사태에 대한 의견을 묻는 내용이었습니다. 저의 이러한 일련의 몸짓이 과연 ‘소금’의 역할에 충실한 것인지는 시간이 평가해줄 일일 것입니다. 싸움닭의 이미지가 저 역시 부담스러운게 사실입니다. 부지런히 행사 쫓아다니고 사람들과 교분을 다지고 얼굴 알리기에 주력하고 싶지만 체질상 어찌할 수 없는 일에 매달리기보다 그냥 저의 방식대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직은 마음속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그 흐름대로 따라갈 뿐입니다. 안개처럼 자욱한 앞길에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수렁에 빠지지 않을까 불안감이 밀려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현재 저에게 필요한 것은 앞길을 내다보는 투시경보다 내 안의 소리를 듣고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자기성찰의 마음인 것 같습니다.
‘크게 된다는 것’
그것은 ‘소금이 된다는 것’과 동의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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