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및 논평

기름띠 바다에 잠기다.-태안봉사 참가기(1)-

김포대두 정왕룡 2008. 1. 26. 22:51
 

*기름띠 바다에 잠기다.*  -태안봉사 참가기(1)-


25일 태안으로 가는 날, 아침 7시까지 시청에 도착해야 하기에 새벽에 일어나 준비하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아빠를 따라 일어나 졸린 눈을 부비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괜히 같이 가자고 했나보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 근래 가장 추운 날씨라는 일기예보 소식이 마음에 걸리기도 합니다. 거기에다 아이가 혼자 외로울까봐 친한 친구를 같이 데리고 가자 했는데 그것도 마음에 걸립니다.


“아빠, 이번에 태안 나도 따라갈래”

처음 제안했을 때 ‘한번 생각해 보겠다’던 아이가 나중에 ‘같이 가겠다’는 말을 했을 때 반신반의 했는데 아침에 졸린 눈을 비비면서도 엄마가 챙겨주는 옷을 입습니다. 어느새 불쑥 자라버린 듯 한 아이의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한구석이 허전합니다.


아이와 친구를 데리고 시청에 도착하니 벌써 많은 분들이 와 있습니다.

“아이들이 감기 들지도 모르는데!”

봉사활동 한다고 아빠를 따라 온 아이들을 보며 기특해 하면서도 맹추위에 염려를 하는 동료의원 분들이 계십니다.


화성 휴게소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태안에  열시 갓 넘어 도착하였습니다.

입구부근 사무실에서 배치받은 장소를 다시 확인하고 현장으로 향하려는데 ‘학생들은 자원봉사 증명서를 받아가라’고 합니다. 아이와 친구를 데리고 컨테이너 사무실에 들어가 함께 서류를 작성하였습니다.

“초등학생은 자원봉사 증명서가 굳이 필요 없을텐데?”

“그래도 기념으로 갖고 가라고 하세요.”

사무실 분들이 옆에서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씀을 나눕니다.


“이번에 우리가 가는 지역은 배가 침몰한 바로 그곳 부근이라서 가장 힘든 곳이라네요. 부지런히 하셔야 할 것 같아요.”

차안에서 현장인도를 담당한 직원이 말을 합니다.


‘태안군 소원면 의항3구’

우리가 작업배정을 받은 곳입니다. 버스에서 내리니 언덕 아래로 그림과 같은 해변풍경이 펼쳐집니다. 머얼리 수평선에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여전히 선박들이 오가고 추위를 비웃기라도 하는 양 다사로운 햇살이 주변에 내려쬡니다. 저 아름다운 바다와 해변이 기름으로 범벅이 되었다는 게 도무지 믿어지질 않았습니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 저마다 방제복과 장화를 착용하였습니다. 손에는 고무장갑도 끼고 마스크를 쓰기도 하였습니다. 아이들용 장화를 찾아보았으나 가장 작은 치수가 265미리였습니다. 하는 수 없이 아이들에게 신발에 발을 맞추도록 부탁하였습니다. 거기에다가 어른들의 방제복을 입히고 고무장갑까지 끼니 뒤뚱거리는 모습이 인형극 캐릭터를 연상시킵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지만 아이들의 진지한 표정 앞에서 참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언덕아래 해변으로 내려가는 길이 제법 깁니다. 먼저 앞서 내려간 어른들의 행렬을 뒤쫓아 서둘러보지만 어른장화를 신은 아이들의 발걸음은 뒤뚱거리기만 합니다. 백사장에 다 내려왔나 싶었는데 하얀 방제복을 입은 다른 일행들만 눈에 띱니다. 눈을 돌려보니 백사장이 끝나는 암석지대에 우리 일행인 듯한 회색 방제복 대열이 보입니다.


“아빠, 기름이 어디있어?”

백사장을 걸어가는데 아이가 물어봅니다. 주변이 온통 눈부실 정도로 하얀색 일색인 풍경이 아이의 눈에는 뜻밖인가 봅니다. 그런데 아이의 궁금증이 풀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어른 일행이 이미 당도하여 작업이 시작된 암석지대에 들어서자 마자 아이들의 걸음걸이가 더욱 늦어집니다. 기름을 뒤집어쓴 바위 표면에 장화가 자꾸 미끄러지면서 엉덩방아를 찧기도 합니다.


“저기 기름띠 선 보이니?”

만조 때 바닷물이 차오른 표면인 듯 아이들 머리 위 절벽지대에 흑백 경계선이 뚜렷합니다.

그 선 아래의 세계는 어둠의 바다에 잠겨있다 잠시 광명의 세계에 모습을 드러낸 듯 보였습니다. 드디어 일행과 합류하였습니다. 여기까지 온 데는 발의 역할이 컸지만 이제는 손놀림을 부지런히 해야 할 때입니다. 여기저기 기름덩어리들이 잔뜩 버티고 서서 ‘해볼테면 해보라’며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