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및 논평

유전지대가 따로 없구만.’ -태안봉사 참가기(2)-

김포대두 정왕룡 2008. 1. 27. 19:15
 

‘유전지대가 따로 없구만.’  -태안봉사 참가기(2)-


“그렇게 바위만 자꾸 문질러봐야 소용없어요. 자갈마당 바닥을 들여다 봐요. 유전지대가 따로 없다구요.”

아이들과 함께 기름을 잔뜩 머금은 바위를 문지르는데 홍기훈 노인대학장님이 바닥을 긁어내며 한소리 하십니다. 의정자문위원 자격으로서 연로하신 몸에도 꼭 참여하고 싶다고 의사를 밝혀서 주위 염려에도 불구하고 따라 오셨습니다. 쉬임없이 손을 놀리시는 모습이 젊은 사람 못지 않습니다. 말씀하는 곳을 바라보니 검다못해 불그스름한 기름덩어리가 모래 밑바닥에서 계속 분출되어 나옵니다.


“우리나라 곳곳에 이렇게 기름밭이 있다면 산유국이 벌써 되었을 텐데...

삼성은 사람까지 죽었는데도  끄덕 안하던데? ‘행복의 눈물’이던가? 그 그림 팔아서 어민들에게 나누어주면 안되나?

조중동이 삼성관련 내용을 애써 모른척 하는거 보세요. 아직도 이 나라는 삼성의 그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니까요.

이렇게 작업해봤자 다시 바닷물이 밀고 들어오면 다시 기름범벅이 되는 걸요. 수십년의 세월이 지나도 회복하기 어려울 거에요.

그때까지 이곳 어민들은 도대체 무엇으로 생계를 이어가지?

친구가 직장을 그만두고 재산을 다 털어 이곳에 팬션 하나 장만했는데 이렇게 사고가 나버려 어쩔줄 모르고 있어요.”


작업도중에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대화내용들이 가슴을 찌릅니다. 간식시간이 되어 빵과 음료수가 돌려졌습니다. 허리를 펴고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니 바다는 여전히 그림같이 아름답습니다. 그 물결에 뒤섞여서 서해는 물론이고 남해까지 떠다닐 타르 덩어리를 생각하니 목이 콱 막힙니다.


“아빠, 마스크를 벗어도 돼?”

아이가 답답했는지 다가와서 말하길래 마스크를 벗겨주었습니다. 어느사이 빨개진 볼에 기름기가 묻어있습니다. 그것을 닦아주려 했더니 더욱 번지기만 합니다. 그래도 아이는 개의치 않고 친구와 함께 다시 솔을 문지릅니다.


어느사이 오후 한시를 넘기면서 작업철수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밀물이 밀려오기 전에 작업현장을 떠나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저마다 철수작업을 시작합니다. 주변에 버려진 폐기물을 마대자루에 주워담고 기념촬영을 한 뒤 다시 백사장을 걸어 나왔습니다. 이번에도 철수하는 일행의 맨 뒷자리는 아이들 몫이었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는지 아까보다는 뒤뚱거리지 않습니다. 얼굴에는 무언가 보람찬 일을 해냈다는 자부심이 배어 있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처음보다 많이 나아졌어요. 그야말로 이 일대가 기름의 바다였거든요. 배가 충돌한 현장이 바로 이 부근이에요. 자원봉사자가 처음보다는 많이 줄었어요. 어민들 심정이야 타들어가죠. 그 속을 누가 알겠어요.”

돌아나오는 길에 만난 폐기물 운반 트럭운전사의 말이 귓전을 때립니다.

버스에 올라타기 전 해변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언덕위 정자에 다가가 보았습니다.

‘떡값검찰 장학생 검찰 삼성이 두려우냐. 태안군민 다 죽이는 삼성을 박살내자’

정자옆에 걸려있는 플래카드엔 어김없이 삼성을 규탄하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아직 살만한 나라인 것 같아요. 이렇게 자비를 들여 가지고 끊임없이 태안을 찾아주시니 얼마나 고마워요? 앞으로 살아갈 일에 한숨이 나오면서도 온갖 일을 마다않고 찾아오는 타향 분들을 대하면 코끝이 시큰거려요. 희망을 버리기엔 아까운 곳, 우리나라 정말 살만한 곳이에요. 정치인들을 비롯한 윗분들만 잘 해주신다면요.”

인근 만리포 식당에 들러 점심을 마치고 나오는데 주인집 아주머니가 자리를 치우며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희망’이라는 끈을 놓지 않으려 애쓰는 심정을 ‘정치인들만 잘한다면’이라는 단서를 달아 표하는 모습에 괜히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오늘 돌아가서 감상문 쓸거지?”

아이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립니다. 그날 밤 집에 돌아와 아이가 쓴 감상문의 일부를 옮겨봅니다.


<체력은 약하지만 있는 힘껏 바위에 숨어있는 기름들을 닦아냈다.

 자갈들을 쓱쓱 문질러주면서도 내가 예전에 갔던 바다의 투명한 자갈이 생각났는데, 이 자갈들도 기름 때문에 그 맑은 빛깔을 잃었다는게 돌이라지만 불쌍하게 느껴졌다.

닦아도 닦아도 바닷물이 기름을 다시 가져오고.... 하지만 그 검은 하늘을 하얗고 맑은 하늘로 덮을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태안주민의 고통을 같이 나누어서 느끼고 싶었고, 그 고통을 기름먹은 바위를 닦아주면서 느낀 것 같아 나도, 내 친구도  힘든 건 잘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