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의 촛불, 청계광장의 촛불....*
“지금 80년대로 역사의 시계바늘이 거꾸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중국이나 미얀마의 자연재앙은 사람의 힘으로 어쩔수 없는 면이 있지만 광우병 사태는 인간으로 인한 재앙인 탓에 시민 여러분이 함께 힘을 모으면 우리는 아이들과 가정의 건강을 함께 지킬 수 있습니다. 한사람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전 국민의 생존권이 벼랑으로 몰리고 있는 이 상황에서 그 어느때보다 시민 여러분들의 참여가 절실히 필요한 때입니다.”
5월 17일 김포 원랜드앞 사거리, 토요일 저녁 종종걸음으로 어디론가 바삐 걸어가는 시민들을 향해 다시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총선이 지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다시 그 자리에서 시민들을 향해 호소하는 마이크를 다시 잡게 되리라고는 예상치 못한 일이었습니다. 여러모로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이명박씨에게 고마워해야 할지 짜증을 내야 할지 헷갈리기만 합니다.
“시민 여러분, 내일이 무슨 날입니까. 5월 18일입니다. 80년대 그 엄혹했던 시절도 이겨낸 우리 국민들인데 지금 전국 곳곳에서 그 시절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전주에서는 수업시간에 고등학생이 끌려나가서 취조를 받았습니다. KBS 사장은 퇴진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MBC 피디수첩을 청와대에서 고발한다고 합니다. EBS 광우병 관련 프로그램이 방영취소되었다가 네티즌들의 거센 항의로 다시 방영이 결정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조중동은 시민들의 눈과 귀를 막아버리려 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의 혈세로 미국소의 안전을 홍보하는 청와대의 광고들이 신문지면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어른들의 잘못된 선택으로 아이들의 미래가 유린되려 하고 있습니다. 시민 여러분들, 이 상황을 그냥 두고봐야 할 것입니까”
촛불문화제가 시작되기전 시민들의 시선을 모으고 동참을 유도하기 위해 마이크를 잡았는데 나도 모르게 자꾸 목소리 톤이 높아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지금 조중동은 학생들의 배후세력이 어떻고 불순좌파 세력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그들의 입맛대로 국민들의 눈과 귀를 여전히 요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민 여러분 , 이 나라의 주인이 누굽니까? 헌법에 나와 있듯이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인 것입니다. 그런데 일부 찌라시 언론들이 조중동 공화국으로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공화국으로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 삼성 공화국으로 변질되어 버린지 이미 오래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이러한 미래를 물려주었을 때 과연 ‘희망’이란 두 글자가 대한민국에 존재할 수 있을까요?”
시민들의 발걸음은 여전히 어디론가 바삐 향하고 있습니다. 소리나는 곳을 힐끗 힐끗 쳐다보기도 합니다. 대책위 분들이 촛불에 불을 켜기 시작합니다. 서명대 좌판이 펼쳐집니다. 몇몇 시민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서명용지에 사인을 합니다.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지만 여전히 숫자는 수십명 단위에 불과합니다.
“시민 여러분, 지금 전국 곳곳에서 희망의 촛불이 켜지고 있습니다. 촛불이 무엇입니까? 자신의 몸을 태워서 주변을 밝히는 희망의 빛입니다. 여러분들이 함께 이 희망의 불을 같이 들어주실 때 김포 뿐만 아니라 우리사회의 희망이 타오를 것이고 저 한강물과 같이 도도하게 흘러 갈 것입니다. 다시 5.18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5.18’이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목이 메이고 말이 이어지질 않습니다.
아빠가 마이크 연설을 시작하자 꼬옥 손을 잡고 있던 손을 살며시 놓고 몇발자국 떨어져서 바라보던 아이가 약간은 걱정스런 모습으로 아빠를 쳐다봅니다. 2002년 미선, 효순이 촛불시위때 광화문에 아빠를 따라나설 때만 해도 아장 아장 걸음걸이였는데, 그래서 그때는 가뿐히 목말을 태우고 광화문 네거리에서 아리랑에 맞춰서 덩실 덩실 춤을 추었는데 어느덧 아이는 초등학교 졸업학년이 되어 아빠를 데리고 나섰습니다.
“아빠, 손등이 뜨겁지 않아?”
행사가 시작된 후 아이와 함께 손을 잡고 섰습니다. 그런데 촛농이 떨어지는 것을 둔감한 아빠가 그러려니 하면서 참고 있으니까 아이가 염려합니다. 그러면서 초를 바꾸라고 말합니다. 벌써 아이는 아빠를 챙겨줄 정도로 훌쩍 커버렸습니다.
“친구들이 깃발 있는 곳에는 가지 말랬어. 깃발 따라가면 이상한 곳으로 갈지 모른댔어”
“응, 그것은 좀 과장된 말이야. 자꾸 안좋게 말하는 일부 언론에서 배후 조직을 떠들어대니까 그것에 구실을 안주기 위해 깃발을 안들기로 했으니 신경 안써도 돼.”
행사장으로 가는 길에 ‘깃발’에 대해 아이와 짤막하게 나눈 대화입니다
“교회 목사로서 기독교 장로인 이명박씨의 행동이 너무도 부끄럽고 죄송스럽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아름다운 생명의 질서를 파괴하는 행동에 대해 기독교인으로서 최소한의 지각과 양심이 있는지 의심스럽기만 합니다.”
신앙인의 아픔과 고뇌가 배어있는 이적 목사님의 발언이 귓전을 때립니다.
“농민분들에게 너무도 절실한 사안인데 이 자리에 농민분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 현실이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최병종 농민회장님의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사우광장 주변을 울립니다.
두시간이 넘게 진행된 김포지역의 촛불문화제는 아직은 초라한 모습이었습니다. 규모역시 채 백명도 되지 않는 사람들이 촛불을 들었습니다. ‘단 몇사람이 모이더라도 김포에서 일단 촛불을 들어야 한다’는 준비대책위의 결정으로 진행된데다가 서울에서의 행사와 겹쳐 동력이 그리 많이 실리지는 않을 거라는 예상을 해보기도 하였습니다. 시민들의 자유발언이 드물었던 탓에 대책위 관계자 중심으로 발언이 이어져 행사를 단조롭게 만든 면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김포에서도 이제 본격적 출발의 신호탄을 올렸다는 점’에서 언젠가는 청계광장 못지않은 활력넘치는 행사가 사우광장에서도 펼쳐지리라 기대해봅니다.
“주말인데 쉬지도 못하고 이렇게 수고하시게 만든것 같아 괜히 죄송하네요.”
해산할 때 다가온 경찰서 관계자에게 악수를 건네며 했던 말입니다.
행사를 진행하느라 애를 쓰셨던 경실련 관계자 분들, 안재범 민주노동당 위원장과 악수를 나누고 아이와 함께 행사장을 떠나왔습니다. 김포의 희망을 일구는데 아직은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아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여러 단체및 정당들이 하나되어 치루어진 행사의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구약 성경의 말을 떠올리며 아이의 손을 꼬옥 잡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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