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양보, 주민화합의 새 장을 열다.*
"정의원님, 다들 도착해서 기다리시는데 어디쯤 오고 계신가요?"
"장릉입구를 돌아서 시청 정문으로 향하고 있는 중입니다."
10월 29일 아침, 풍무중 체육대회 개막식에 참가한 뒤 서둘러 시의회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했다. 조재덕 교육 체육과장의 전화가 걸려왔을 때 '벌써 다들 와 계시다' 는 말이 귓전을 때린다. 정식 개관을 앞둔 풍무고 체육관 활용 논란에 대해 오늘은 매듭을 지어야 하는 날이다.
"풍무고에 체육관을 짓는데 도움을 주시면 지역사회에도 개방하여 주민활용시설로 활용하면 일거양득이 될 것 같습니다."
전임 김동식 시장 시절 풍무동 지역 주민과의 대화 때 당시 교장선생께서 이와 같은 건의를 드렸고 시장께서는 흔쾌히 즉석에서 긍정적 대답을 하였다. 그리고 비용마련및 공사진행 과정에서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이제 정식 개관을 눈앞에 두고있다. 아직껏 변변한 체육시설이나 실내 행사장 하나 없는 풍무동 주민에게는 '풍무고 체육관 완공'이 비록 학교내에 위치한 시설이지만 지역사회에 아쉬운 속에서도 갈증을 해소해 줄 수 있는 해결책으로 기대되었다.
하지만 돌출변수가 발생하였다.
경기도 교육청 지정 '세팍타크로' 팀이 체육관 기공식을 하면서 창단된 것이다. 올해 초 새로 부임하신 현 교장선생께서 전에 재임하였던 학교에서 팀을 운영하면서 많은 성과를 냈던 운동부서라고 하였다. 안정적 실내공간에서 코트를 사용해야 하는 특성을 갖고 있는 '세팍타크로 ' 운동부 창단은 체육관 개관을 학수 고대하던 주민들, 특히 배드민턴 동호회 주민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사안이었던 듯 하다. '기껏해야 열 댓명 되는 소수인원의 운동부서를 위해 20억이 넘는 예산을 투입하여 체육관을 짓고 시대적 추세인 학교시설 개방에 걸림돌로 작용해서야 되느냐'는 시각이 강했다. 풍무동 배드민턴 동호회는 현재 장릉산 사유지 공터에 천막을 치고 간이시설을 만들어 수년째 백여명의 회원들이 평일 아침과 주말시간에 운동을 해오고 있는 중이다.
학교측에서는 체육관 기공식 당시 경기도의 지정종목으로 선정이 된 데다 체대 지망생들의 상시활용까지 감안하면 주민개방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나섰다. 여기에 입시를 앞둔 학생들에게 면학분위기 조성은 필수적이라며 시설개방에 우려를 표방하는 학부모들의 의견이 강력 개진되었다. 지난 2월에 첫 졸업생을 배출한 풍무고의 교육열기는 관내에서 둘째라면 서러울 정도의 분위기다.
'이런 때는 어떻게 해야 한담?'
학생과 학부모도 주민이고 배드민턴 동호회원도 주민이다. 다들 주장에 일리가 있다. 더구나 이 사안은 학교라는 교육기관과의 문제다. 시의회나 시청은 협의역할이지 관리감독권이 없다. 난감하기 짝이 없다.
"주민시설 개방은 학교측에서 최초 제안당시 먼저 한 말입니다. 지원은 지원대로 받고 이제와서 상황의 어려움을 들어 난색을 표한다면 일관성의 결여라는 비판을 받을 것입니다. 더구나 다른 데도 아니고 교육기관에서 말입니다."
풍무고 교장실을 방문하여 했던 말이다. 그러면서 학교측의 구체적 대안마련과 시청 담당부서의 관심을 촉구했다. 아울러 학교, 동호회 주민, 시청간 관계자 연석회의를 제안했다. 하지만 학교측의 답변은 늦어지기 일쑤고 구체안이 결여되어 있었다. 동호회 주민들은 시청을 비롯해 관계요로에 거듭 최초 약속이행을 촉구하는 민원을 제기하였다. 학교측에 요구하였던 연석회의에 대한 답변은 오지 않고 있었다. 음식점에서 우연히 뵈었던 교장선생은 '주민들과 원만한 협의가 다 끝났으니 의원님은 이제 신경 안쓰셔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주민들 반응은 그게 아니었다.
지난 98차 임시회에서는 의회의 현장확인 일정에 풍무고 체육관 방문을 추가하였다.
시의원들이 집단 출동하였는데 학교측에서도 어머니들을 중심으로 한 학교운영위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교장, 교감 선생의 학교측 상황 설명에 여러 의원들의 반응이 시큰둥 했다. 몇몇 의원들이 날선 질문을 했다. 학교측의 자기중심적 설명에 불만이 표출됐다. 나 역시 교장선생에게 목소리를 높혔다. '차라리 개방불가'라는 실상을 솔직, 정확하게 표현했으면 나을 뻔 했다. '주민에게 개방의사'를 거듭 밝히면서도 현실적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태도가 너무 정치적 제스처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제가 연석회의를 제안한지가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별 반응도 없고 더욱 상황을 꼬이게 만드시니 유감입니다." 그날 현장에서 교장선생에게 나도 모르게 언성을 높혔다. 학부모 대표들이 지켜보는 상황에서 부담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일의 순서와 원칙에 대해 짚을 부분은 짚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날 별다른 소득은 없이 인상만 붉혔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정작 해법은 깝깝해 보였다.
그리고 29일 오전 10시, 시의회 접견실에 관계자 분들이 함께 모였다.
풍무고에서는 교장, 교감선생및 학부모 대표 4분이 참석했다. 배드민턴 동호회도 회장을 비롯해 임원단 4분이 오셨다. 교육체육과장의 진행으로 회의가 시작되었다. 처음부터 분위기가 자못 심각하다. 동호회 임원분들은 '당초 약속' 이행을 거듭 제기하였고 학교측에서는 학부모 대표들이 적극 나서서 '입시환경의 절박성'을 강조하였다. 때로는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하고 상대방의 말을 자르기도 하고 여러명이 동시에 발언을 하여 난상토론이 되기도 하였다.
"시의원님께서 한 말씀 하시죠."
교장선생님이 답답하셨는지 논쟁 내내 경청만 하고 있던 나를 바라보며 말씀을 건넨다.
"일단 이 사안의 본질은 풍무동 지역내 변변한 체육시설이 하나도 없다는데서 출발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최초 제안당시 학교측이 주민개방을 이야기 했고 이를 근거로 시청의 지원을 받았음에도 말을 번복했다는 것은 분명히 짚어야 할 부분인 것 같습니다. 이 때문에 지난 번 현장 방문시 교장선생님께 본의 아니게 언성을 높였던 적도 있습니다. 문제는 세팍타크로가 이미 운영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여기에는 입시성과를 올리기 위한 틈새시장의 개척이라는 면도 있는 듯 합니다. 아무래도 오늘 이 자리에서 결론이 나오기는 힘든 것 같습니다. 각 단체별로 전권을 위임받은 분들이 한 분씩 남으셔서 실질적 대안을 갖고 다시한번 이야기를 했으면 합니다,"
'후속회의를 좀 더 구체적으로 하자'는 나의 제안에 대해 모두들 반대한다. 오늘 이 자리에서 결론을 내자는 거다. 다시 논쟁이 계속 되는가 싶었는데 맹광재 배드민턴 동호회장님이 실마리를 푸는 발언을 하셨다.
"우리도 과거 학부형들이었거나 지금도 학부형들인 사람들입니다. 학생들의 공부 분위기를 방해하면서까지 체육관 시설을 이용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더구나 현재 일정표를 보면 새벽이나 밤늦은 시간말고는 활용이 현실적으로 불가능 합니다. 그래서 시청쪽에 제안합니다. 하루빨리 지역내에 주민 체육시설을 지어주십시오. 배드민턴 동호회 뿐만 아니라 전체주민들의 열망입니다. 아울러 현재 장릉산의 임시시설에 대해서는 무허가시설이라고 단속만 할게 아니라 체육시설 완공 때까지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배려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토지 소유주와 원만한 협의가 이뤄지도록 시청쪽에서 적극 나서주셨으면 합니다."
순간 장내 분위기가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학교나 학생들의 눈치 봐가면서 학교시설을 찔끔찔끔 사용하기 보다는 고생스럽더라도 근본적 해결책이 나올 때까지 현 위치를 고수하겠다는 뜻이었다.
"이제 공은 다시 시청과 저한테로 넘어와 버렸네요. 어깨가 더 무거워졌습니다."
박수가 나오고 서로 악수가 건네진다. 이웃이라는 이름으로 학부형과 동호회 주민들이 하나가 되었다. 서로간에 덕담이 오간다.
"풍무동 주민들을 무시하면 국회의원이고 시장이고 의원들이고 오래 못갑니다. 풍무동 기반시설 마련에 얼마나 구체적 관심을 가질지 두고 볼 겁니다."
"그럼요. 저희도 응원할겁니다. 풍무고 역시 좋은 결과를 내어서 지역 업그레이드에 앞장 설 것입니다. 지역 명문고 육성이 브랜드 가치를 올리는데 핵심인거 아시죠?"
입구에서 배웅할 때 교장선생께 다가갔다. 전에 학교 방문시 언성을 높혔던 것에 대해 사과의 말씀을 드렸다. '허허' 웃으신다. 악수의 손길에 따뜻함이 느껴진다. 이래서 양보와 이해는 아름다운가 보다. 일부 학부형과 주민들은 통성명을 하다가 누구 누구 안다며 벌써 이웃사촌이 되어버렸다.
"계속 몇 년째 미뤄져 오고 있는 풍무 체육공원 마련에 과장님이 팔걷어 부치고 나서야 겠어요. 과장님의 추진력을 기대해 봅니다. 수고하셨어요."
조재덕 교육체육과장에게 헤어지면서 건넨 말이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여전히 많아 남아있다. 그래도 현실적 어려움을 냉정히 파악하고 당장의 이익보다 근본적 해결책 접근에 시야를 돌린 배드민턴 동호회의 결단에 박수를 보낸다. 풍무동은 여전히 아름답고 희망이 넘치는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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