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및 논평

대한민국을 찾습니다.-용산 참사현장에서

김포대두 정왕룡 2009. 1. 28. 03:18

*대한민국을 찾습니다.*


'국가가 국민을 보호해주지 못할 때 국민들은 과연 누구에게 의지해야 할까?'

딸아이와 함께 용산참사 현장에 섰을 때 스쳐간 문구다.


이 구절을 누구에게 들었을까?

기억을 더듬어보니 경찰청에서 제작한 계도용 동영상에서 본 생각이 난다. 6.25당시 한강 인도교 폭파장면과 함께 스쳐간 자막문구였다. 작년 민방위날 행사때 보았던 문구가 갑자기 용산에서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당시 동영상 도입 부분이 인상적이어서 '혹시나'하고 주의해서 봤지만 결국은 '북한은 믿을 수 없다'던 반북 반공내용 흐름일변도였다. 특히나  붉은 악마와 촛불집회 행렬을 '철없는 불장난'으로 묘사하는 생뚱맞은 장면에 실소를 금치 못했는데 이미 그때부터 예고된 사고였다는 생각이 스친다.


'국가 공권력이 국민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때 국민들은 과연 누구에게 의지해야 하는 것일까?'

용산참사 현장에서 그 문구를 각색하여 도발적인 질문을 던져 보지만 그 어디에도 답변을 해주는 사람은 없다.


전쟁으로 폭격맞은 건물의 잔해가 이런 모습일까?

뼈대만 앙상하니 남아있고 주변에는 불길에 전소된 전경차가 나뒹굴고 있다.


국제빌딩이 한 켠에 버티고 선 용산시장 일대..........

시장통 한복판에 콩나물국밥이 맛있어서 아이 엄마와 가끔 들르던 식당은 온데간데 없다.

회정식이 맛깔스럽던 일식집도 사라졌다. 폐허가 되어버린 시장통엔 고양이만 주인처럼 휘젓고 다닌다.


'과연 그 방법밖에 없었을까?'

여전히 건물 주변을 둘러 싼 경찰들에게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면 뭐하랴. 저들 역시 동원된 대상에 불과한 것임을.......


'용산'이라는 두 글자가 가져다주는 무게가 예사롭지 않다.


87년 초 박종철이 물고문으로 사망해서 실려갔던 곳이 중대 용산병원이다. 그가 고문당했던 남영동 대공분실이 지척이다. 그 양쪽 지점사이에 용산 철거민 참사현장이 놓여있다.


작년의 촛불시위와는 사뭇 다른 무게가 가슴을 짓누른다. 어느 면에서는 여유가 있었고 한때는 낭만이 넘치기도 했다. 월드컵 못지않은 국민축제의 분위기도 느꼈다.


하지만 오늘 현장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를 한마디로 표현하라 한다면 그야말로 '전쟁터'라는 말이 맞을 것 같다. 여유와 낭만, 대화가 비집고 들어갈 조그마한 틈새도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시위도 아니고 농성도 아니고 전쟁이다.


국민을 테러범으로 규정하고 극한의 대결상태로 몰아가는 국가권력 앞에서 힘없는 서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헌법을 지키고 수호하라고 국민들이 공권력을 위임했는데 오히려 헌법정신을 부정하고 유린하면서 줄줄이 권력앞에 맹종하는 자들이 숱하다. 그들에게 대한민국은 오간데 없고 그들만의 나라가 있을 뿐이다.

우리 눈앞에서 한순간에 대한민국이 실종되어 버렸다.

아니 숭례문과 함께 한줌의 재로 변해버린지 오래다.

 

실종되어 버린 대한민국을 도대체 언제 어디로 가야만 찾을 수 있는 걸까?

불타버려 잿더미로 변한 대한민국을 어떻게 복원할 수 있는 것일까?


'여기 사람이 있다'

건물에 내걸린 걸개그림의 불길속에서 사람들이 울부짖고 있다.

테러범이 아닌 떼잡이가 아닌 사냥감이 아닌 '사람'이 있다고 절규하고 있다.


박노해는 분명 '사람만이 희망이다'라고 했는데

안치환은 '누가 뭐래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했는데

건물 옥상 망루에서 죽어간 사람들에게 그러한 시와 노래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자들도 희망과 아름다움의 대상에 속하는 걸까?



2009년 1월 27일.

용산참사 현장에서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건물의 잔해가 목놓아 외치는 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사람을 찾습니다.

대한민국을 찾습니다.

헌법을 수호할 공화국 시민을 찾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