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및 논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민주당의 것은 민주당에게.

김포대두 정왕룡 2009. 9. 28. 04:05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민주당의 것은 민주당에게.-희망새님에게.


안녕하세요. 희망새님.

올려주신 글을 읽고 제 의견을 곧바로 밝힐까 했는데 게으름 탓에 이제사 글을 올립니다.

이미 시민광장 중앙 게시판이나 김포 게시판에서 여러 의견이 오갔기에 저의 소감중심으로 자유롭게 글을 써볼까 합니다.


참여 민주주의 전유물 논란

<어느 정당이나 적어도 정강 정책에서는 민주주의 운영을 규정, 표방하고 있는 바 새로울 것이 없는 ‘참여’라는 것을 과대 포장하여 자신의 브랜드 가치로 내거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더구나 신당이 표방하는 정책이 무엇인지 조차 명료하지 않은 채 당을 창당하는게 합리적이라 할 수 있는가?>


 아마도 글 서두에 님께서 말씀하려한 내용을 요약한다면 위와 같은 것 같습니다. 제가 제대로 이해했나요?


이에 대해 우선 저의 의견을 말씀 드린다면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당이란게 정강 정책이 마련되고 그 위에 살을 덧붙여 기존 정당과의 차별화를 제시하는게 창당과정의 기본이란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기본이지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한국사회의 정치문화 현실에서 명문화된 정강 정책이 계급적 이해관계와 연결되어 국민에게 평가받는 모습을 그린다는게 얼마나 허망한 일인지 님도 잘 아실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문화된 참여가 아니라 진정성과 현실성이 있고 감동이 있는 참여입니다.

노랑색 희망을 추구하는 분들에게는 개혁당과 열린 우리당에 대한 두 번의 창당 경험이 있습니다. 2002년 대선과정에서 화염병을 드는 심정으로 뛰어든게 개혁당이었다면 상향식 전국정당문화의 구축을 표방으로 창당된게 열린 우리당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우리 모습은 보시다시피 초라하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전의 경험에서 반면교사의 경험과 지혜를 소중히 모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랑색 희망을 추구하는 분들 사이에 이심전심으로 대강의 틀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참여’의 가치에 대해 초반부터 정강정책 문구의 완성을 가지고 힘을 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 저것 교과서적으로 다하기에는 아직 우리의 한정된 역량이 너무 초라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창당과정에서 뼈대를 만들고 살을 붙이는 절차적 과정에 함께 참여하여 시민주권정당의 실체를 몸소 체험하는 기회가 저는 더 소중하다고 봅니다.


백마디 화려한 말이 담겨 있어도 사문화된 정강 정책을 붙들고 있는 것보다 ‘미완성 교향곡’에 담겨있는 진정성이 저는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참여’에 대해 새로울 것이 없는데도 이를 내세우고 있다며 신당을 비판하는 님의 논리를 그대로 따라가 보자면 노무현님의 ‘참여정부’ 표방도 새로울 것이 없는 것이겠죠. 왜냐하면 1공화국 헌법에 ‘주권재민’이 명기된 순간부터 우리는 참여 민주주의 국가였으니까요.


님께서는 대의원 제도 존재 유무를 ‘참여’와 연관시켜 비판하는 논리로 삼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직접민주주제냐 간접민주제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존의 대의원제도가 진보정당이라고 하는 곳에서 조차 보스나 계파 중심의 안배의 산물로서 존재하고 있는 것은 님께서 잘 아실 것입니다. 향후 대의원제 채택이 필요하다면 필요한대로 이에 대한 보완이나 추진 여부는 역시 신당의 당원들이 결정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명한 것은 민주당등 기존 정당에서 대의원제를 통한 간접민주제의 참된 구현은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능 하다는 것이고 이를 극복하려는 새로운 시도가 인터넷과 핸드폰에 기반한 당원 직접민주제의 추진이라고 보시면 될것 같습니다. 그래서 신당의 홈피주소에 (handypia) 담겨있는 의미의 소중함이 남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지역주의및 정책적 이념적 차별성 제기에 대해


님께서는 지역주의 반대는 선언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기존 지역주의 정당과 신당이 이 사안에 있어 무슨 차별이 있냐고 물으셨습니다. 님의 표현대로 이 사안은 선언의 문제라기 보다는 실천의 문제입니다. 그러기에 이병완님등은 언론 인터뷰에서 다른 지역은 몰라도 영, 호남 전 지역에서 광역후보를 반드시 내겠다고 여러번 밝히고 있습니다. 동시에 수도권은 민주당과의 전략적 연대를 염두에 두겠다는 이야기도 덧붙이고 있습니다. 아직 출범도 하지 않은 신당에서 이 정도 이상의 구체적 진정성이 담긴 의지표현말고 벌써부터 어떤 결과물을 내놓아야 하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오히려 저는 님의 그 다음 표현에서 미국등지의 사례를 들어가며 지역주의는 정도의 차이문제지 그 어디에서나 흔히 목격할 수 있는 모습이라고 말하는 대목에 눈길이 갑니다. 제가 민노당류의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답답함이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지역주의나 지방분권 문제를 계급적 이해관계의 하위개념으로 두면서 이를 해소하면 자연스레 지역주의도 해소될 것이라는 게 그분들의 주장이죠. 하지만 현실은 어떻습니까? 영남권 노동자들이 그들의 계급관계에 기반하여 투표를 하나요? 선거제도의 변경을 MB가 갑작스레 화두로 꺼내놓았지만 현실화 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한두개가 아닙니다. (이 말이 선거구 제도의 변경을 반대한다거나 그 의미를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닌 것 아시죠?)


님의 표현이나 주장이 의도했든 아니든 기존 조중동이 지속적으로 표현하는 ‘영남권 친노신당’의 프레임에 결과적으로 갇혀버릴 위험성을 저는 느끼게 됩니다. 향후 신당의 태동과 실천의 과정에서 이 사안은 집중적으로 다뤄져야 할 핵심사안이라 생각됩니다.


유시민, 신당, 그리고 민주당.


이 문제를 물어보는 분들에게 하는 대답은 이렇습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민주당의 것은 민주당에게, 신당은 신당대로...’


민주당에 대해 지금까지 감정적 언사나 비난을 하는 분들을 적어도 신당추진하는 관계자분들 중에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민주당이 집요하게 ‘분열주의’라는 용어로 어찌보면 한줌의 세력도 아직껏 형성하지 못한 신당추진 하는 분들을 공격하는 모습에 고개가 갸우뚱거려집니다.


각자가 자기 갈길을 가서 민주세력의 파이를 최대한 키워 연대의 틀을 형성해보자는게 왜 분열주의 행동인지 저는 아직 이렇다 할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지난 시기 민노당에 대해 서운한 점은 지속적으로 열린 우리당을 공격해서 중복되는 지지층을 뺏어 오겠다는 속이 뻔한 의도 때문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사안에 따라서는 한나라당과 연대까지 해서 말입니다. 똑같은 오류를 신당이 민주당에 대해 범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근거없는 비난과 정당한 비판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합니다. 아무런 근거없이 제 1 야당이라는 이유하나 만으로 (물론 이 의미는 민주당 분들에게는 굉장한 것이죠) 자기들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는 논리는 보완해야 할 점이 한두개가 아닙니다. 무슨 내용과 명분으로 뭉쳐야 하는지에 대해 명쾌한 논리가 없는 무원칙한 민주대연합론은 국민들 사이에서 이제는 설득력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각자가 자기의 갈길을 가면서 선거시기 합리적 방안을 갖고 연대의 틀을 모색하자는 게 왜 문제인지 설명해주는 분들을 아직 저는 찾지 못했습니다. 혹자는 말을 합니다. 막상 선거에 돌입하면 과연 그게 가능하겠느냐고 말입니다. DJP 연합이나 노무현 정몽준과의 단일화도 했는데 왜 그게 가능하지 않다는 것일까요.


선거연대의 키는 민주당이 쥐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들의 진정성을 내보일 통큰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이 지방선거를 뛰어넘어 민주세력 대선 재집권의 가능성을 여는 유일한 길입니다.

하지만 민주당은 기득권을 버리겠다고 하면서도 못하고 있습니다. 안산 보궐선거에서 과감하게 임종인을 밀고, 수원 장안에도 손학규나 장상 전 총리 카드를 고심하기 보다 지역인물을 중심으로 과감하게 정면돌파하는 모습이 너무도 아쉽습니다.


유시민님에 대해 열정적 관심을 갖는 분들은 그분들대로의 정치에 대한 동기부여방식을 존중해드리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유시민님의 정치적 행보와 선택도 전적으로 유시민님의 몫입니다. 선거는 인물중심일지 몰라도 정당은 시스템 구축과 올바른 정치문화 형성이 먼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아무리 선거가 임박했다 할지라도 창당과정에서 자꾸만 정치공학적 사고가 우선시되는 인물중심의 논의전개는 위험한 면이 있습니다. 이것은 김포지역의 현실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할 면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추후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님은 민주당의 야성회복 가능성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저는 진짜 이렇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신당 태동여부와 관계없이 말입니다.

아니 적어도 신당추진 사실이 민주당을 자극해 전라도 정당이 아닌 님이 말씀하신 정책정당, 진정성 있는 전국 정당으로 발돋음 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신당추진의 의미는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야성 회복’이 전부만은 아닐 것입니다. 열린 우리당 시절 그렇게도 소망했던 ‘상향식 민주정당’의 모습에 대한 자기비전 제시가 없다면 민주당의 기득권 포기와 전면적 변화론은 진정성을 의심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님께서 표현한대로 신당추진이나 참가가 ‘어설픈 소영웅주의’로 끝날지 의미있는 실험단계에서 멈출 것인지 아니면 저의 바램대로 이땅 정치문화의 새 장을 열지는 아직 아무것도 검증된게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각자가 자기지향하는 바를 가지고 시민주권 모임이 되었든 민주당이 되었든 신당이 되었든 혹은 시민광장이 되었든 각 단체나 정당, 조직에 참여하여 깨어있는 시민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신당추진하는 분들에 대해 ‘여론몰이’ 한다거나 혹은 유시민 상표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소영주의 행동으로 오해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국민의 선택지를 늘려 파이를 최대한 키우고 민주당을 자극해 자기변화를 강제하는 것’

이것만으로도 신당추진의 의미는 충분하다고 봅니다. 제 생각의 실현가능성 여부는 치열한 우리의 노력과 시민들의 호응에 달려있겠죠. 물론 쉽지만은 않은 이 어려운 과정에 몸을 내던진 저의 우둔함(?)이 어떤 결과로 귀결될지는 훗날의 결과물이 말해줄 것입니다.


이말 저말 늘어놓다보니 시계 초침이 어느새 새벽 3시 50분을 가리키고 있네요.

우리 귀에 익숙한 졸업식 노랫말로 어줍잖은 글 마무리 할까 합니다.


‘냇물이 바다에서 다시 만나듯 우리들도 이 다음에 다시 만나세’


-희망새님을 만나게 해준 노짱님에게 감사하며 김포대두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