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야.
쌔근쌔근 잠든 너의 모습이 아빠의 눈에 들어온다. 어제는 하루종일 비가내리다, 그치다 했었지? 모처럼의 일요일인 오늘, 너와 놀아주지 못한 아빠가 밉지 않았니? 네가 그렇게도 기다리던 일요일이었는데 아빠가 감기몸살이 심해지는 바람에 감기 옮을까봐 엄마는 가까이도 못오게 하고….
"미안, 미안."
어제 토요일 오후에 아빠가 인천에만 가지 않았어도 오늘 누리와 거뜬히 놀아줄 수 있었을텐데. 하지만 아빠는 후회하지 않는단다. 아빠는 가슴 속 하나 가득 에너지를 잔뜩 넣어가지고 왔으니까 말이야. 비록 그 덕택에 오늘 골골댔지만 조만간에 누리에게도 큰 선물을 안겨줄 수 있을거야.
도대체 왜 인천에 갔었냐고 물어볼거지?
응. 민주당 대통령선거 후보자를 뽑는 경선대회가 있는 날이었단다.
올해 12월에 새 대통령을 뽑는데 거기에 나가는 후보자를 미리뽑는 행사지.
아빠가 그일과 무슨 상관이 있냐구? 국민의 한사람인 아빠가 이 나라의 주인인데 우리의 일꾼을 뽑는 행사에 관심을 안 가지면 되겠니?
하지만 어제 오전에 아빠는 많은 갈등을 했었단다. 그저께 할아버지, 할머니 생신축하를 위한 가족모임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먼거리를 모셔오고 모셔다 드리느라 무리를 했던지 감기몸살이 밀려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지. 거기에다 그날 저녁 김포에서 있은 노사모(노무현 아저씨 펜클럽) 모임에 무리한 상태에서 참석한 후유증이 밀려오더구나.
토요일 오전, 아빠가 일하는 신도림역 근처의 학원에서 수업중 잠시 창밖을 내다보니, 역주변으로 비가 제법 굵게 내리고 있더구나. 오랜 봄가뭄 속에 내리는 비라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는데 마음 한편으론 '오후에 인천에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밀려오더구나.
하지만 으실으실 떨리는 몸을 무릅쓰고 아빠는 결국 인천행 결심을 굳혔단다.
끝 수업인 4교시가 마무리가 된 오후 한시경, 아빠는 주변 선생님들에게 작별인사도 안하고, 조용히 학원을 빠져 나왔단다. 역 근처의 구내식당에서 서둘러 점심을 든든히 채우고 인천행 전철에 몸을 실었지.
전날 김포 노사모 모임에서 한 약속도 약속이었지만 웬지 오늘만은 '역사의 현장'에 빠져서는 안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단다. 마치 87년 6월 항쟁때 학교기말고사를 코앞에 두고 고민하던 중 거리로 뛰쳐나갈때의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이성적 판단에 앞서 마음속에 끓어오르는 그 무엇의 감정을 주체못하겠더구나.
주안역을 지나 도화역에 내려 길을 물어 물어 인천전문대 부근에 도착하니 쩌렁쩌렁한 함성과 구호가 스피커에 실려 들려오더구나. 아빠는 역시 대선경선의 열기가 뜨겁긴 뜨겁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정문쪽으로 다가갔단다. 그런데 아빠의 지레짐작은 여지없이 깨져버렸으니 다름아니라 대우자동차 노조 아저씨들이 정문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었단다.
"새천년 미친놀음 민주당을 박살내자"
네가 듣기에는 좀 섬찟하니? 노조 아저씨들이 외친 여러 구호중 가슴을 찌른 구절이란다. 아빠의 마음 속에는 순간 무거움이 밀려오더구나.
그 아저씨들이 정문 양쪽에 모여있는데 그 한가운데를 지나서 들어가던 아빠는 그분들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그냥 앞만 응시한 채 무심한 척 지나쳤단다. 그 대열 속에는 인천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빠의 친구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아빠는 살펴볼 엄두도 못내고 그냥 빠른 속도로 지나가 버렸구나. 무얼까? 그순간 아빠의 마음을 그토록 무겁게 짓눌렀던 것은? 그에 관해서는 다음에 다시 대화를 나누도록 하자꾸나.
정문으로부터 경선장소인 인천전문대 체육관 입구까지 이르는 길은 제법 경사가 져있었지. 오르막 길 앞쪽을 바라다보니 우비의 물결이 양쪽 길가로 보이던데 먼저 눈에 들어온 색깔은 흰색 우비의 사람들이었단다. 그분들은 '정동영'을 외치면서 홍보지를 나눠주고 있었는데 아빠의 관심은 그 다음의 노란색 물결에 눈이 갔단다.
아빠가 오늘 이곳에 오게 만든 노무현 아저씨의 상징 색깔이 노란색이었으니까 말이야.
언덕 중간쯤부터 양쪽으로 죽 길게 늘어서있는 노란색 우비, 노란색 뱃지, 노란색 손수건, 족히 200여명 정도 되어보이는 사람들이 노란색으로 도색(?)을 한 채 구호를 외치고 있었단다.
아빠는 웬지 겸연쩍어서 그 행렬 한가운데를 지나가지 못하고 슬그머니 길가 대열 뒤로 숨어들었단다. 그래도 뭔가 함께 하러온 마당에 동참해야 할 것 같아 주변 사람이 내미는 손수건을 하나 받아들었지.
길 한 가운데에서 덩치가 좋은 분과 약간 홀쭉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다른 분 등, 두 명의 아저씨가 대열을 인도하고 있는데 "노오-무현 짱, 짝짝짝 짝짝 구웅민 통합 짝짝짝 짝짝" 여러 사람들이 한덩어리가 되어 그 아저씨의 몸짓에 함께 구호를 외치고 삼삼칠 박수를 치고...
아빠는 아직은 몸이 안풀려서인지(?) 약간 어색한 몸짓으로 함께 따라하면서 위를 쳐다보니 그쪽에는 이인제 아저씨 응원하는 사람들로 보이는 초록색 모습의 아저씨, 아줌마들이 눈에 들어오더구나.
그런데 길 한가운데에서 머리가 약간 희끗희끗한 아저씨가 매우 자연스럽게 구호와 손짓을 함께 따라하며 올라가는 사람마다 악수를 청하고 구십도로 인사를 하는데 어디서 많이 본듯한 얼굴이다 했더니 '명계남' 아저씨더구나.
노사모에서는 '명짱'으로 불리는 아저씨로 이 모임의 대표이기도 하단다. 아빠는 오늘 처음봤는데 생각보다 나이가 많이 들어보이시더구나. 그런데 누리야 너도 그 노래알지? "떴다 떴다 비행기" 말이야.
사람들이 이 노래를 '떴다떴다 노무현' 하는 식으로 노래를 개사하며 부르는데 중간중간에 펄쩍 펄쩍 뛰어오르는 동작을 함께 하더구나. 그런데 명계남 아저씨 말이야. 나이도 만만치 않은 분인데도 불구하고 펄쩍펄쩍 잘도 뛰시는거 있지? 나중에 알았는데 전날 대구경선에 참석차 내려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상태에서 불편한 몸임에도 현장에 달려오신거라더구나.
조금 분위기에 익숙해져 주변을 보니 이게 웬일이니. 흰수염이 덥숙하신 할아버지도 계시고 개량한복 걸쳐입고 열심히 몸을 흔들어대는 할머니도 계시고, 50 중반은 되어보이는 중년신사도 눈에 보이고 누리 네 또래 비슷한 친구들도 사이사이에 끼어있구.
한참 어린 후배들만 모여있을 줄 생각하였던 아빠의 지레짐작이 정문 풍경에 이어 두번째로 깨어지는 순간이었단다.
명계남 아저씨 뒤로는 '옥이이모'에서 선생님 역할을 맡았던 텔런트-이름은 잘 모르겠다마는-아저씨가 노무현 아저씨 지지글자가 적인 어깨띠를 두르고 열심히 악수를 청하고 있는 장면도 눈에 들어오더라.
오전 내내 내리퍼붓던 빗줄기도 이젠 가늘어지고 사람들이 점점 불어나면서 주변의 열기가 점점 고조되어 갔단다. 아빠의 머릿속 관심은 유세가 진행되고 있을 체육관 내부에 가있었지만 오늘 아빠가 이 자리에 온 것은 '구경꾼'이 아닌 '참여자'로서 왔다는 생각에 그 자리를 지키기로 했지.
그런데 누리야. 이게 웬일이니. 아래쪽 정동영 아저씨이나 이인제 아저씨는 그냥 지지하는 사람 이름을 외치는 단순형식이었던데 반해 이쪽 노사모쪽은 웬만한 프로경기 응원전 저리가라 할 정도로 그 내용과 형식이 다양하더구나.
'노무현 짱, 국민통합' 구호를 삼삼칠 박수와 함께 섞어 외치면서 기호2번을 그린 손가락을 위로 치켜올리는 동작은 기본안주였지. 여기에다가 파도타기 기차놀이, 어깨동무 스크럼을 짠채 길 중앙으로 모였다가 다시 물러나고….
또한 자발적으로 앞에 나선 몇몇 사람은 입구로 올라오는 시민들을 향해 계속 인사를 하며 '노무현'을 외치더구나.
특히 기차놀이하면서 위아래로 오고갈 때 마주보는 옆줄사람들과 손바닥을 올려치는 '하이파이브'를 나눌때는 감동의 물결이 밀려왔단다. 꼬 끝이 찡하더구나.
"누리야."
전혀 한번도 보지못한 사람들끼리 이름도 성도 모르는 사람들인데도 그냥 자연스럽게 연인처럼 하나가 될 수있다는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니? 아빠는 오늘 그 현장을 직접 목격했단다. 그래, 이게 바로 예술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오랜만에 내린 봄비를 맞은 개나리들이 길가 양쪽 담벼락위로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던 반면 노란색 우비, 노란 손수건, 노란 뱃지들로 길 한복판에 새롭게 피어오르며 환호하는 노사모라는 신종개나리들을 보는 순간 아빠는 노란색이 그렇게도 아름다울수가 없었단다. 눈가에 눈물이 글썽거려 쓰윽 소매를 가져다가 훔칠정도로 말이야.
그래. 87년 6월의 거리가 이랬었지. 그냥 거리로 달려나가기만 하면 물을 떠주고 휴지를 건네주고, 경찰에 붙잡혀 끌려갈라치면 함께 달려들어 구해주고….
아빠는 직접 겪어보지는 안했지만 아마도 80년 5월 광주의 거리도 그랬을거야.
누리야. 아빠는 그순간 '우리는 과거를 살면서도 현재를 살고 현재를 살면서도 과거를 산다'는 알 듯 말듯한 문장을 떠올려봤단다.
대부분 점심을 안먹었는지 날라온 김밥으로 그냥 노상에 주저앉아 식사를 하면서 잠시 숨을 돌리는데 아빠 맞은 편에 서있는 웬 젊은 오빠는 그 시간도 아까운지 연신 계속 외쳐대더라. 그 오빠가 뭐라고 외쳤는지 아니?
'노무현을 사랑합니다. 내조국 대한민국을 사랑합니다. 인천시민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반갑습니다.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거의 쉬지않고 외치는 그목소리에 담겨져 있는 뜨거움은 아빠의 심금을 울리더구나.
특히 빼놓지 않고 말하던 "내조국 대한민국을 사랑합니다"라는 구절은 요즘들어 '민족주의'가 갖고 있는 국가폭력적 성격이나 자문화 중심주의의 위험성에 대해 여러생각을 하고있던 아빠의 마음을 그냥 뒤집어 놓았단다.
"내조국 대한민국을 사랑합니다"
어찌보면 굉장히 평범한 이 한 문장이 지금도 귓가에 쟁쟁한 이유는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속에는 '희망'이라는 두 글자가 담겨져있더구나. 더구나 그것은 누가 던져준 것이 아닌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내고 가꾸었으며 앞으로 이루고야 말것이라는 확신 말이야.
누리야. 혹시 '국기에 대한 맹세'라는 거 알고있니?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다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라는 내용인데 아빠는 이뜻의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국민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귀가 따갑도록 외우고 듣곤 했단다.
무미건조하게 수없이 듣고 암송했던 이 말보다 그 오빠의 '내조국 대한민국을 사랑합니다'라는 구절 하나가 아빠의 가슴 속에 안겨다 준 감동의 물결은 두고두고 잔잔함과 뜨거움의 여운으로 남을 것 같구나.
길가로 올라가는 시민들이나 투표를 마치고 빠져나오는 분들 중에는 상당수의 사람들이 노무현 아저씨의 기호 2번을 그려보이며 같이 호응을 해주고 여기에 자극받아 환호와 함성이 더욱 커져가곤 했단다. 아래 정문쪽으로부터 커다란 경적소리가 들리길래 쳐다보았더니 다이너스티 대형 승용차가 올라오는데 운전석에 앉은 아저씨가 창밖으로 기호2번을 그려보이더구나.
"야 부자 아저씨들도 노무현을 좋아하나 보네?" 아빠의 머릿속에 스친 생각이었단다.
순간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면 교육개혁을 강력히 할 것이고 그러면 학원가에 찬바람이 불 것이다. 그러니까 노무현을 반대한다'던 아빠일터의 동료선생님의 말도 함께 생각나더구나.
자신의 처지를 뛰어넘는 사랑과 열정을 바친다는 것 참 만만치 않은 일일거야. 그런면에서 좌익활동에 연루되어 감옥살이하다가 돌아가셨다던 장인의 딸을, 판사직까지 포기할 결심을 해가며 아내로 맞아들였다던 노무현 아저씨의 모습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했구.
어느덧 시간은 오후 5시를 넘어섰는데, 지도부의 권유에 따라 개표결과 발표를 보기위해 우리일행은 체육관으로 들어섰단다. 그런데 앞부분에서 사람들이 술렁이길래 무슨 일인가 하고 봤더니 어떤 여자분에게 몰려가 너도나도 악수를 청하더구나. 알고봤더니 얼마 전에 노무현 후보 지지선언을 했던 '추미애' 의원이었단다. 누리만큼은 못하지만 소문대로 미인이더라.
"조선일보 이놈들, 가만 안놔들거야"
저런 이미지의 여인 입에서 어떻게 조선일보를 향해 비록 술자리에서지만 그런 당찬 소리가 나올 수 있었을까? 참 대단하다 라는 생각을 해보았단다.
아빠는 그 주변을 지나치며 그전날 김포 노사모 모임에서 나누었던 가벼운 논쟁이 떠올랐단다. 추미애 의원의 뒤늦은 노무현 아저씨지지 발언 행동을 어떻게 보아야 할것인가 라는 것을 놓고 열띤 공방을 벌였지. "기대가 컸던 만큼 소극적 행동에 실망이 컸다"며 "이제와서 지지선언하는 것은 일종의 눈치보기 행동이 아니냐"는 문제제기에 "그런 비판이 나올 것을 당연히 알았을 것임에도 이제라도 자기의 의사표시를 한 것은 또 다른 용기와 소신의 표현이 아니냐"고 아빠는 반론을 제기했었지.
드디어 체육관 내부에 들어서서 보니 그 규모가 엄청나더구나. 전문대학 한 학교의 실내체육관이 이렇게 크다니 도저히 믿기지가 않을 정도였단다. 비리재단으로 소문났던 이 대학의 이사장 백인엽이라는 사람이 학생과 교수, 시민들에 의하여 강제로 퇴진하게 되었을 때 얼마나 속이 쓰렸을까 라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단다.
한동안의 휴식시간이 종료되고 드디어 잠시 퇴장하였던 세 후보가 다시 단상에 오르고 개표결과 발표를 눈앞에 둔 순간에 주변은 일순간 정적에 휩싸이더구나.
옆에 앉아있던 김포회원 아저씨는 "만에 하나 이번에 진다면 인천에 다신 안온다"고 하기도 하고 50%를 갓넘은 투표율에 주변 아줌마들은 초조해 하기도 하던 중 드디어 개표결과 발표, 득표율51.9% 득표수 1022표로 노무현 1위가 선언되는 순간 장내는 노사모 회원들의 함성으로 떠나갈 듯 했단다.
연단의 노무현 아저씨도 우리쪽을 향해 손을 흔들더구나.
충청도 인구가 많고 보수적 성향도 강한 지역인데다가 오전내내 쏟아진 빗줄기에다 연휴 한복판의 투표일등 여러 우려에도 불구하고 전날 대구에 이어 인천에서도 1위를 굳히는 순간 주변에서는 "그럼 그렇지"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단다.
"누리야."
이번 인천 경선은 여러면에서 의미가 컸단다.
조선, 중앙, 동아로 대표되는 3대 메이저 신문이 이인제 아저씨의 '노무현 색깔론'을 여과없이, 오히려 더욱 확대 과장보도해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마비시키려는 총공세가 절정에 달한 시점이었기 때문이지.
그런데 나중에 안 이야기이지만 이날 서두에 연설할 때 노무현 아저씨는 '조선,동아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라'고 당당하게 요구하였다더구나. 주위 사람들은 '역시 노짱'이라는 말을 하더라.
체육관 입구쪽에 다시 모여서 마무리 행사를 하려는데 대열을 재정비하자며 아빠가 있는쪽의 사람들보고 중앙앞쪽으로 옮기자고 하더구나. 아빠는 무심코 따라갔는데 아빠 옆에 명계남 아저씨가 있는 것도 좋았는데 조금있다 '노무현 아저씨'가 부인과 함께 다가와서 아빠 바로 앞에 서는 것 있지? 주변에 사진기자들 카메라가 터지고 잠시동안 소란이 일더니만 정리가 되고 이재정 국회의원 아저씨, 노무현 아저씨 부인, 그리고 노무현 아저씨의 말이 짧게 짧게 이어지더구나.
특히 아빠가 기억에 남았던 장면은 대열중에서 몇몇 사람이 '조강지처'를 연호하자 목이 메이는 듯 핸드마이크를 잡고 '노사모 여러분 사랑합니다' 라는 짧은 한마디로 인사말을 대신한 부인 권양숙 씨의 모습이었단다.
누리 지금 너의 나이보다 훨씬 어린 4살 때 아버지가 감옥에서 돌아가셨다니 그때 그분의 친정아빠를 그리는 심정이 어땠을까? 만에 하나 이번에 친정아버지 건으로 남편인 노무현 아저씨가 좌절을 맛본다면 이를 지켜보게 될 본인의 심정은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며 안스러움이 들었단다.
이인제 아저씨는 한 나라의 '퍼스트 레이디'로 빨간물이 든 사람의 딸을 뽑을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식의 이야기를 했다지만 누리야 아빠는 이 대목에서 엊그제 생신축하 자리에서 만나뵌 분당 할아버지 할머니의 말씀 한구절이 생각나는구나. "지금이 어느땐데 색깔 운운하느냐"는 말 말이야.
정리 모임이 끝나고 식당에 식사하러 갈 때 아빠는 먼저 김포분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빠져나왔단다. 목동에서 있는 주말 학원수업때문이었지. 적어도 그 순간만은 감기몸살도 싸악 물러간 듯 보였고 저녁 수업도 무리없이 할 것 같아 몸과 마음이 마냥 가볍기만 했단다.
전철역까지 걸어가는데 앞서서 걷던 아주머니 한분이 아까 현장에서 보았던 '노란 손수건'을 소중히 접어서 핸드백에 넣는 장면이 눈에 띄더구나. 원래 반납하기로 되어 있는건데 아빠는 그 장면을 보면서 "어 저 아주머니 왜 갖고 나오셨지?" 라면서 눈을 찡그리기 보다 그냥 훈훈함이 가슴속으로 밀려들어왔단다. 마치 소중한 보물 다루듯 조심조심 접어서 넣는 모습이 '희망'이란 꿈을 키우는 정원사의 모습을 연상케 했으니까 말이야.
그런데 누리야. 이보다 더 감동스러운 장면은 전철을 타고난 이후에 보게 되었단다.
아빠 건너편에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오빠 언니가 같이 앉았는데 피곤했던지 타자마자 서로 얼굴을 기대며 그냥 잠에 빠져들더구나. 그런데 그 오빠는 아까 현장에서 목에 둘렀던 노란색 손수건을 그대로 두른채였단다. 아빠의 호기심은 옆에 앉아 잠에 빠져든 언니한테 옮겨갔단다. 아니나 다를까, 가방에는 노무현 아저씨 캐릭터가 그려진 노란색 뱃지가 달려있더구나.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뿌듯한 기쁨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청춘남녀들의 함께 잠든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 보여서 아빠 역시 피곤했지만 마냥 계속 쳐다보기만 했단다.
전철 안에 피어있는 노란 개나리 한쌍은 주변을 참 환하게 비쳐주었지.
어느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언니가 오빠를 놔두고 먼저 내리려는지 자리를 일어서며 손을 흔들더구나. 전철이 멈추고 언니는 내리고 오빠는 다시 잠에 빠져들려는데 창밖에서 언니가 반쯤 졸린눈으로 오빠를 부르는가 싶더니 손으로 노무현 아저씨의 기호2번을 그려보이는 것 아니겠니? 오빠도 씩 웃으면서 똑같은 손짓을 하더구나. 전철은 점점 미끄러져갔지만 아빠는 두사람의 작별 인사모습이 지금 이 순간까지 안 잊혀지는구나.
"누리야."
아빠는 왜 그렇게 노무현 아저씨를 좋아 하느냐고 물을거지?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에 대화를 나누어 보자꾸나. 한가지 알아둘 것은 일개인에 대한 선호도 여부로만 이 문제를 바라보면 안된다는 거야.
누리야. 오늘 엄마와 약속했단다. 다음 기회에는 너를 데리고 엄마 아빠가 함께 가기로 말이야. 그때 갔다와서 다시 이야기를 나눠보자꾸나.
명계남 아저씨가 그날 모임에서 한말을 떠올리며 오늘 이야기를 이만 끝맺으련다.
벌써 날이 바뀌어 새벽4시가 다되었구나.
"참고 인내하며 세상을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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