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야.
아빠 오늘 여의도에 갔다 왔단다. 많이 덥더구나.
여름이 가까워오는 듯 한낮의 열기는 아스팔트를 달구는데 아빠는 한나라당사 앞에서 난생 처음 '1인 시위'라는 걸 해보았단다.
누리야.
기억나니? 아빠따라 성남에 가서 민주당 경기경선에 참여했던 일 말야. "노무현 아저씨 보러 가자"는 아빠를 따라나섰던 그날도 오늘 못지 않게 더웠지?
그날 저녁 너는 이모에게 그랬었지. 너무 너무 재미있고 신났다구. 아빠는 네가 그 말할 때 체육관 옆 놀이터에서 꼬마 노사모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재미있어서 그러는 줄만 알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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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룸펜이 아니에요'라며 노사모 회원들은 자신의 명함을 모아 전시했다.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
그리고 일주일 후 서울 경선에서 노무현 아저씨가 최종후보로 확정되던날 너는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아빠 나 왜 안 데려갔어. 이번에도 가고 싶었단 말야"라고 소리쳤지. 아빠 차 뒤에 붙인 노무현 아저씨 스티커에 엄마가 씩 웃으며 입을 맞추자 너도 함께 따라하고 싶다고 칭얼거리길래 안아서 올려주었더니만 기어코 뽀뽀를 하더구나.
엄마와 아빠가 노짱 아저씨에 관해 토론을 하자 너는 아빠의 노트북 앞으로 달려가 마우스를 만지작거리더니만 '아빠'를 불러댔지. 한참 엄마와 열띤 대화 도중이라 짜증을 냈더니만 "아빠 꼭 한 번만"이라는 말에 마지못해 다가갔던 아빠는 그 순간 놀랐단다.
노트북 어디서 찾아냈는지 노트북 바탕화면을 인천경선 때 찍었던 사진으로 바꿔놓고 자랑스레 아빠를 올려다보는 모습이란... 그러면서 너는 언제 배웠는지 경선장에서 불려졌던 응원가를 흥얼대더구나.
누리야.
그런데 박원홍이란 아저씨가 이러한 우리 누리를 사이비 종교집단의 철부지 어린아이라고 하는구나. 아빠는 거기에 물든 광신도가 되어버렸구. 그날 아빠와 함께 모였던 사람들은 룸펜이요 홍위병이 되어버렸으니 원. 유명한 방송사 시사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지금은 국회의원도 하는 아저씨인데 말이야. 분명 그 아저씨는 외국 유학까지 갔다왔고 권위있는 학위도 받았을 거야. 그런데 도대체 뭘 공부했을까?
그 아저씨가 인터뷰 시간에 기자에게 거침없이 쏟아낸 말은 노사모 아저씨 아줌마들을 잔뜩 화나게 만들었고 어제부터 릴레이 1인시위에 들어갔단다.
누리야.
오전수업을 마친 아빠는 여의도에 갔단다. 아니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석에 이끌리듯 무언가에 끌려갔다는 표현이 맞을는지 모르겠다.
아빠가 도착했던 한나라당사 앞 오후 2시 풍경.
항상 시위라는 두 글자만 떠오르면 긴장되고 삼엄한 장면만 연상하던 아빠의 고정관념이 일순간 깨져 버렸단다. 사람들도 별로 없고 썰렁한 주변 풍경, 한 청년이 앞뒤로 글자가 써 있는 대자보 판을 두르고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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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함 전시회에 전시된 이색 명함(?)들.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
행여나 아는 사람이 없을까 하고 주변을 둘러봐도 눈에 안띄길래 약간은 실망했단다. 아빠는 1인시위 하는 사람 앞에 펼쳐져 있는 사진과 자료나 훑어보고 그냥 돌아가자는 마음으로 그 앞으로 다가갔단다.
그런데 누리야.
아빠는 난생 처음 보는 신기한 장면에 푹 빠져든 거 아니?
보도블록바닥에 전시되어 있는 국민경선 사진을 볼 때만 하더라도 익숙한 내용에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그 옆으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명함 명함 명함 명함 명함...
세계 최초라는 말에 걸맞게 마치 신문의 활자처럼 촘촘히 한나라 당사앞 보도블록을 메우고 있는 명함들은 금방이라도 일어서서 당사 안으로 들어갈 듯한 기세로 당당히 정열해 있더구나.
순간 아빠는 혼란에 빠져버렸단다. 명함이 아빠를 보고 있는 건지 아빠가 명함을 보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더구나.
"빨리 우리가 있는 이곳으로 들어오세요."
명함 속에서 외치는 소리에 이끌려 아빠 역시 그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단다. 허락도 없이 지갑에서 스스로 걸어나온 명함은 아빠의 손을 고가사다리처럼 이용하더니만 사뿐히 그 대열 속에 연착륙하더구나. 아빠는 그 명함 위에다 인/부/김 누리아빠란 글자를 새겨 넣었단다.
누리야.
아빠는 약 한 달 전에야 명함이란 걸 처음 가져봤단다. 학원강사라는 직업이 명함에 대한 필요성이 그리 큰 직업은 아닌지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했는데 얼마 전에 아빠가 다니는 학원에서 만들어주길래 그냥 지갑 한쪽에 몇 장 넣고 다녔단다.
그런데 만일 그때 명함이 없었으면 얼마나 아쉬웠을까?
아빠는 학원 원장님에게 처음으로 진심을 담아 감사했단다.
변호사, 기자, 약사, 볼링장 아저씨, 편의점 영업사원, 대학원생, 아이엄마 등 다양한 직업들이 망라되어 있던데 가만히 보니 명함들 사이로 팩스용지, 신문, 사진 등 여러 형식의 용지들에 눈에 들어오더라.
안중근 의사처럼 손바닥을 찍어서 보낸 분도 계시고 독일노사모 아저씨들이 보낸 팩스용지도 눈에 들어오고. 먼 지방에서 택배로 배달한 명함들도 눈에 들어오고.
어떤 분이었을까?
이런 아이디어를 내놓은 분이 말이야.
박원홍 아저씨가 노사모분들을 '룸펜'이라고 불렀단다. 할 일 없으니까 경선장이나 쫓아다니며 시간 때우는 사람들이라는 거지.
'우리는 결코 할 일이 없는 놈팽이가 아니다'는 항의표시로 명함시위를 하게 된 거란다.
그런데 누리야. 아빠의 눈길을 끄는 종이가 있었단다. 혹시 '주보'라고 들어봤니? 교회에서 발행하는 주간소식지 비슷한 것인데 그 첫면을 어떤 분이 복사해서 보냈더구나. 그게 뭐 어쨌냐구? 첫면에 교회이름이 나오고 그 바로 아래에 담임목사님과 교육전도사 이름이 써 있는데 그 두 이름에 동그라미가 굵게 쳐져 있더구나. 그리고 그 옆에 또렷한 글씨로 뭐라고 써 있는지 아니?
'둘 다 노사모'...
누리야. 아빠는 그 다섯 글자 앞에서 한참 서 있었단다. '둘다 노사모 둘 다 노사모. 둘 다 노사모'
코끝이 찡하더구나. 아빠는 그 이름 위로 누리와 아빠 엄마 이름을 새겨넣었단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말했지 '우리 모두 노사모.'
"우리 회사 사람 이름은 안보이네요. 많이 붙이고 싶은데 저 한 사람이라도 붙일게요."
근처 직장에서 나왔는지 한 젊은 아저씨가 명함을 꺼내어 테이프로 붙이며 한 말이란다. 명함붙이기 도우미를 하던 두 언니는 그저 신이 나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또 오세요"란 말을 연발하더구나. 그런데 그중 한 언니가 '내가 무슨 장사꾼 같네?'하면서 웃음을 터뜨리는게 아니니?
"젊은 양반 나한테 넘기지?" "저도 한 지 얼마 안되는데요?" "내가 시간이 없어서 그러는데 잠깐만 할게." "예 알았어요."
대화소리에 고개들어 앞을 보니 선글라스를 낀 멋진 아줌마가 젊은 오빠의 대자보판을 인계받아 앞뒤로 두르더구나.
누리야. 아빠는 그 순간 주변을 둘러보면서 다시 한 번 놀랐단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이럴 리가 없는데, 없는데'하면서 약간은 초라한 분위기에 실망했는데 이게 웬일이니?
주변 여기저기에 꾸역꾸역 옹기종기 모여 있거나 서 있거나 한 분들이 다 노사모 가족이었던 거 있지? 각자가 편한 자세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면서도 웬지 시선은 다 한나라당사 앞을 향하고 있는 느낌이 들더구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아빠는 대자보판을 두르고 서 있는 멋쟁이 아주머니에게 '안바쁘세요?'라고 무심코 물어봤단다. 그런데 그 아주머니 기다렸다는 듯이 "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해야죠"라며 큰 인심이라도 쓰는 듯 아빠에게 대뜸 인계를 해주는 거 있지? 아빠는 얼떨결에 대자보판을 두르고 한나라당사 앞에 서 버렸단다.
누리야? 또 아빠 핀잔줄 거지? 걸핏하면 나선다고 말이야.
그런데 누리야.
아빠가 난생 처음 1인시위라는 걸 한답시고 한나라당사 앞에 섰는데 맞은편에 한 건물이 눈에 들어오는 거 있지? "대한주택보증'이란 건물 기억나니? 작년 2월 28일, 아빠가 아파트 아저씨 아줌마들과 시위하던 장소말이야.
김포에 분양받은 아파트 회사가 부도나고 몇 달 후 승계시공사 입찰이 있던 날 '부실공사와 최저가 입찰반대'을 외치며 아빠는 너와 함께 저쪽 건너편에 있었지. 그때도 아빠는 얼떨결에 대열 앞에서 핸드마이크를 손에 들고 전경들과 몸싸움하며 목이 터져라 외쳤는데 일 년이 넘은 지금 그 건너편에서 다른 형태의 시위를 하게 되니 참 묘하더구나.
그때와 지금 달라진 게 무엇이 있을까?
'맞아 그땐 노사모가 없었고 지금은 노사모가 있다.'
순간 아빠의 머리를 스쳐지나간 생각이었단다.
"너도 학생증 꺼내서 빨리 붙여."
아빠 앞을 지나가던 대학생 언니가 남자친구에게 던진 말이란다.
"대한민국 국민인 나를 왜 비키라고 하는 거야?"
당사 앞에 털썩 자리를 잡고 앉아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던 웬 아저씨를 전경들이 강제로 옮기려하자 그분이 항의를 하더구나. 옆에서 있던 다른 아저씨가 당사 앞의 불법주차차량이나 단속하라며 거들고 나서기도 하고.
아빠는 서 있는 채로 주변을 살펴 보았단다.
왼쪽편에 플래카드 몇 장이 걸려 있는데 '국가혁신위 범국민 보고대회'라고 써 있더구나. 도대체 뭘 혁신한다는 것이지. '당신들의 혁신이란 게 고작 우리아이들을 사이비 종교집단의 철부지로 모는 거요?'
아빠가 속으로 중얼거린 말이란다.
"아빠, 돼지를 내가 살렸어" "어떻게 살렸어?" "테이프로 붙였지." "와 우리 누리최고."
그때 네가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했던 말들 기억나니?
어제 문방구에서 사온 돼지저금통에다 그 동안 모아놓았던 동전꾸러미를 하나 가득 집어넣기 시작했지.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아빠, 돼지가 배부르대" 꽉 들어찬 돼지를 들어보이며 자랑스럽게 말하던 순간, 무게를 못이기고 바닥에 떨어진 돼지는 그 순간 한쪽 부분이 깨져버리고 네가 애써 집어넣었던 동전들이 쏟아져 나오고.
울먹거리던 너는 '으앙' 울음을 터뜨리더구나. 아빠는 네가 놀라고 속상해서 그런 줄만 알았단다. "돼지가 죽었어. 너무 불쌍해. 내친구란 말야" 너는 금세 돼지를 마음속에 품고 정을 쏟아부었더구나. "누리야. 자꾸 울면 안돼. 그럼 돼지가 하늘나라에 못간단 말야" 엄마의 위로도 소용없었지. "나는 돼지와 헤어지는 게 싫단 말야. 자꾸 울음이 나오는데 엄마 아빠는 왜 그치라고 하는 거야. 울게 좀 내버려둬." 근 30분 이상 울어대던 너는 쌔근쌔근 아빠 무릎 위에 잠들어버렸지.
그런데 아빠가 1인시위를 하고 있던 그 현장에 걸려온 소리, "아빠 돼지를 내가 살렸어. 나 칭찬해줘. 우리 돼지가 옆에 있어".
누리야.
아빠는 그때 뿌듯함보다도 분노가 치밀어 올랐단다. 이렇게도 착하고 사랑스러운 우리 누리를 누가 사이비광신도 집단의 철부지라고 했는지 그 사람을 혼내주고 싶었구나.
"어이 대전 룸펜이 왜 여기까지 왔어?" "어떤 씨팔놈이 나를 룸펜이라잖아. 눈에 띄기만 해봐라 그냥 꽉..."
아빠 앞의 두 분이서 나눈 대화란다.
"아저씨 여기 좀 봐주세요." 어떤 분이 카메라를 들이대고 아빠를 찍는 거 있지? 아빠는 스타가 된 기분이었단다. 앞을 지나가는 차들이 잠시 멈추는가 싶더니 아빠를 쳐다보다 지나가고 아빠는 그분들을 향해 씩 웃어보이고...
"목마르지 않으세요? 음료수 좀 갖다 드릴까요?"
"됐습니다. 뭘 이 정도 가지고요."
뭔가 아빠를 도와주고 싶어하는 도우미 언니의 제안을 아빠는 겸연쩍게 거절했단다. 잠시 후 어느 젊은 오빠가 다가오길래 아빠는 그 사람과 교대를 하였지. 그때서야 아빠는 비로소 아빠가 들고 있던 대자보판의 글씨를 보았단다.
'우리는 돈을 받고 움직여 본 적 없다. 박 의원 당신야말로 룸펜이다' 대자보판의 일부 구절이야.
'어무요 지가요 놈팽이입니다' 바닥에 써 있는 구절 위로 '내동생 첫생일이에요'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오길래 자세히 봤더니 어느 분이 가족신문을 통째로 명함대신 붙여놨더구나.
누리야.
아빠는 다시 저녁시간대에 일할 학원을 향해 출발했단다.
'박 의원님 룸펜이 일하러 갑니다'. 당사를 향해 혼자말로 중얼거리고 그중 한 아저씨와 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 차에 올라탔지. 한 30분이 지났을까? 강남 부근에 이르렀는데 전화가 걸려오길래 받았더니 "형 나 사대 86학번 찬규인데 기억나세요?"라는 소리가 들려오더라.
"야. 그럼 기억나지. 10년도 넘었네. 너 아직도 헐크 이미지 그대로냐?" "아유 형은 원판불변의 법칙 모르세요? 저 지금 여의도예요." "직장이 그 근처니?" "예."
아빠는 그때까지도 그 삼촌이 그냥 오랜만에 안부전화하는 줄 알았단다. 그래도 궁금하여 내 전화번호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봤단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형, 여기 시위현장에 붙여져 있는 형 명함을 보고 알게 됐어요 .형 이름이야 워낙 특이해서 동명이인으로 착각할 필요도 없구요"라는 말을 하지 않겠니?
누리야.
아빠는 그 순간 오래 전에 방송국에서 이산가족찾기 운동을 벌이던 장면이 떠올랐단다. 방송국 주변에 가득 붙어 있던 벽보를 보고 소식을 확인하던 일 말이야. 노사모는 이렇게 오래도록 소식이 끊겼던 사람도 만나게 해주는 참 대단한 단체지 않니? 그러니 박원홍 아저씨에게는 광신도집단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생가도 해보았단다.
누리야. 벌써 아침이 밝아오는구나. 어느새 꼬박 밤을 새워버렸네.
오늘 글이 참 길었지? 그래도 어떤 의무감에 밀려 자세히 써야만 했단다. 아빠는 얼마 전에 덕평 수련원에 참가해서 그 소식 안 알려주었다고 미국에 사는 후배이모에게 혼났단다. 마왕아저씨의 글을 대신 소개시켜주었지만 그래도 많이 아쉬워하더구나. 그에 대신하는 마음으로 이 소식을 전할 겸 썼는데 글이 엄청 길어져버렸네.
아빠는 오늘 갔다 와서 결심을 했단다.
'꼬마 노사모 정누리'라는 예쁜 명함을 누리에게 새겨주기로. 그리고 누리손 붙잡고 여의도에 가서 붙이고 올리라고 말이야.
안녕. 우리 딸 잘자렴. 조금이라도 눈을 붙여야겠다. 사랑해.
-룸펜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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