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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일까? 천등일까? - 김포의 길을 묻다(10)

김포대두 정왕룡 2014. 2. 6. 13:46

천둥일까? 천등일까? - 김포의 길을 묻다(10)


칼바람이 몰아치는 오후. 천등고개에 올랐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천둥고개와 명칭을 헷갈려한다. 그도 그럴것이 강화도령 철종이 강화를 떠나 왕에 오르기 위해 한양도성으로 가던 중 행차를 재촉하는 소리가 천둥소리같이 크게들렸다는 일화가 있다. 자신이 왕족인지도 모른채 무지렁이 섬소년 원범이로 거칠게 자랐던 사람이 철종이다. 어느날 영문도 모른채 한양으로 납치되다시피 이끌려가 왕위에 오른 그다. 전해지는 일화와는 달리 그가 이 고개를 넘어가면서 울먹이는 모습으로 강화를 향해 몇번이고 되돌아보았을 모습이 상상된다. 

천등고개는 지금보다 매우 높고 숲이 우거진 고개였다한다. 연이어진 고개가 또하나 있어 덧고개라 했고 그 사이사이로 이어지는 오솔길이 꽤 길게 이어졌나보다. 그래서 산적이 들끓었고 천명이 무리지어야 안심하고 넘을 수 있는 고개였다 한다. 그래서 천등고개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지금이야 도로공사로 높이도 한참 낮아지고 덧고개도 자취를 감추어버려 천등이라는 이름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무어가 그리 바쁜지 쉴새없이 고개를 넘어가는 차량들이 잠깐 스쳐가는 곳일 뿐이다.

천등고개에 올라서면 아련한 아픔이 스며온다.
한국전쟁당시 치안대에 의해 양민학살이 자행되어 지금의 상하수도 사업소인근 산자락에 80여명의 시신이 유기된 기록을 알게되면서부터다. 9.28수복후 인민군 부역혐의로 몰린 수십명의 주민이 고촌면사무소 양곡창고에 갇혀있다가 새벽에 끌려나가 천등고개 일대 미군이 파놓은 참호에서 학살되었다. 진실과 화해위원회의 2008년도 기록에 의하면 천주교 고촌공소 창립자였던 송해붕 정도만 종교복장으로 신원확인이 가능하였다 한다. 나머지 시신은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하게 짓이겨져 그냥 흙으로 덮어버렸다 한다.

김포는 천등고개만이 아니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전쟁과 분단, 학살의 상흔이 서려있다. 그 아픔들이 오늘따라 칼바람에 더욱 에이는듯 가슴을 저며온다. 이땅에 진정한 평화가 찾아오는 날은 언제일까? 누가 김포의 길을 찾는 날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주저없이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는 그날일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반세기 전에 채 못다피고 스러져간 영령들을 위로하며 길손은 천등고개를 천명이 아닌 혼자서 스쳐지나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