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및 논평

“아빠, 괴물이 불쌍했어.”-9월 3일(2)

김포대두 정왕룡 2006. 9. 5. 00:02
 

“아빠, 괴물이 불쌍했어.”-9월 3일(2)


딸아이가 빠알갛게 달구어진 얼굴로 차에서 내렸다. 파주 물놀이가 재밌다고 했다.

아이들이 출발할 때 배웅나오셨던 김문수 교장선생님이 도착도 맞이하러 나오셨다. 직접 아이들을 데리고 다녀오셨던 교감선생님도 함께 계셨다. 지도 선생님들이나 아이들이나 다들 만족스런 표정이다.

선생님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하나로 마트에 들러 장을 본뒤 사우동 메가라인에 갔다. 처음에는 모처럼 가족끼리 노래방에 들르기로 했는데 지나는 김에 영화시간이나 확인해보자고 매표소 앞에 들렀더니 10분 후 시작이다. 그냥 표를 끊고 들어갔다.


“12살 이상이라는데 나는 해당안되는데 어떻게 해, 엄마?”

“응 , 어른과 동행하면 가능하니까 걱정하지마.” 아이엄마가 딸아이를 안심시킨다. ‘투모로우’를 본 후로 3인가족 전체가 함께 영화관에 들르기는 처음이다. ‘아랑’을 아이엄마와 조조할인으로 본 뒤로 처음인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영화시작.....

독극물 방류, 현수의 납치, 가족의 억류, 구출작전의 개시, 현수 할아버지의 사망, 그리고 복수, 그렇지만 현수의 죽음과 그 대신 얻게된 아이하나.....


천만명 돌파니, 최고기록 경신이니 하는 행렬에 우리 가족역시 동승을 마치고 나온 기분이 각자 어땠을지?


반미영화? 환경영화? 가족사랑 영화?

한마디로 정의내리기 어려운, 그러면서도 두루두루 각 개인의 경험고리를 한강이라는 틀속에 엮어넣어 관람객을 장면 장면마다 주인공으로 끌어들이는 장치를  갖춘 게 ‘괴물’의 특징인듯 했다. 시대적 주제를 정면으로 다루기보다 은유적 장치로 간접화법을 연출하는 봉준호 감독의 기법이 여기에서도 나타나는 데 대해 평론가마다 반응이 제각각인 듯 했다.


개인의 불행앞에 국가권력이라는 존재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들의 불행에 어떤 해결책을 내놓기 보다 오히려 억압하고 가로막는 공권력의 허울앞에서 자구책을 내놓은 사람들은 결국 민초 자신들이라는 결론은 희망의 메시지일까? 절망과 허무주의의 언어일까?


정상적(?) 가족생활의 실패자라는 딱지를 대물림한 변희봉 송강호 부자, 사회적응에 실패한 전직 운동권 삼촌, 금메달에 실패한 동메달리스트 고모, 거기에 막판 괴물에 기름을 퍼붓는 노숙자에 이르기까지 괴물에 맞서는 이들의 몸부림은 통상적 기준으로 보았을때 실패한 인생의 군상들이다. 하지만 결정적 위기의 순간에 이들에게서 용솟음치는 에너지의 본질은 무엇일까?


“아빠, 어느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아?”

“응, 삼촌이 화염병으로 괴물을 공격하는 장면.”


“화염병? 그게 뭔데?”

“응, 소주병에다 불붙여서 던지는거.”


“근데 아빠는 왜 그게 기억에 남는데?”

“사실은 아빠도 예전에 그걸 많이 던졌거든.”


“응? 아빠는 어떤 괴물과 싸웠는데?”

“글쎄, 그때도 괴물이 있었는데 영화에서 본 괴물과는 다른 괴물이야. 나중에 누리가 크면 이야기 해줄게.”


“근데, 아빠, 소주에 불붙인거 얻어맞은 괴물이 몸부림치며 도망칠 때 굉장히 불쌍해 보이더라.”

“와!. 우리 누리가 괴물까지도 불쌍히 여기다니.... 역시 천사야 천사.”


아이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정작 괴물은 우리안에 있는 또 다른 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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