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야.
바깥에서는 안면도의 파도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는데 엄마와 함께 달콤한 잠에 빠져있는 기분이 어떻니?
누리에게 참 오랜만에 편지를 써본다.
우리 꼬마 아가씨가 아기적에는 아빠가 참 편지를 많이 썼는데 커가는 과정에서 바쁘다는 핑계로 무심해져 버린 것 같구나. 그래도 아빠를 넉넉히 이해해주면서 무럭 무럭 커가는 우리 누리에게 아빠는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그렇구나.
요즘 엄마와 아빠가 나누는 여러 대화를 들으면서 속상하거나 염려되지는 않든?
그래도 우리 누리는 엄마 아빠를 이해할뿐더러 용기를 북돋워 줄거지?
엄마 아빠, 씩씩하고 강한거 누리도 알지?
그래, 엄마 아빠는 누리를 실망시키지 않도록 이 어려움을 잘 이겨내고 새로운 각오로 출발할 거란다.
누리를 ‘현장학습’이라는 명목으로 학교를 이틀이나 결석시키고 오늘 오후 늦게 도착한 안면도 해변을 보며 누리가 기뻐하는 모습에 아빠도 참 기분이 좋았단다.
방파제 바로옆에서 대하를 먹으며 추운 바닷바람에 엄마와 같이 침낭을 둘러맬때는 기분이 좋든? 그저 엄마는 누리가 기분좋고 씩씩하면 얼굴이 밝아지는구나.
아빠는 누리가 항상 부럽다.
엄마의 사랑을 세상 그 누구보다도 듬뿍 받고 있으니 말야. 아빠하고는 비교가 안될 정도니 나중에 커서 엄마에게 얼마나 효도할는지 두고 볼거다.
벌써 자정이 다가오고 있구나.
아빠는 방금전 엄마곁에서 쌔근쌔근 자고있는 누리를 놔두고 베란다에 나가 창밖의 밤바다를 바라보았단다.
아까 도착했을때는 해안도로에 바짝 붙어서 손짓하던 파도물결이 한참이나 멀어져 있고 누리네 학교 운동장보다 수십배는 넓어보임직한 백사장이 밤안개 사이로 희뿌옇게 펼쳐져 있더구나.
아빠는 서해바다에 올때마다 밀물 썰물의 움직임속에서 드러나는 백사장이나 갯벌의 규모에 새삼 놀라곤 한단다. 조수간만의 차가 거의 없는 동해바다와 달리 서해는 해안선의 변화무쌍함이 참 매력적 요소란다. 사람들이 밀물만 주목한다면 그 아래 감추어져 있는 저 거대한 백사장을 생각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 버리는 경우가 많을 것 같구나.
썰물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백사장에 환호하며 달려가기 보다 밀물때에도 눈에 드러나지 않는 물결아래 세계와 대화를 나눌 줄 아는 넉넉한 시야를 가진 누리가 되었으면 좋겠구나.
이런. 또다시 누리에게 넋두리를 늘어놓는 병이 도져버렸네.....
“아빠, 또 글 쓸거지? 이번엔 ‘서해바다와 하나가 되다’, 이런 제목 어때?”
안면도로 내려오는 길에 누리가 아빠가 쓸지도 모를 글에 대해 미리 제목을 지어주던 일 기억나니? 글쎄, 아빠의 볼품없는 글이 누리의 관심대상이 될뿐만 아니라 직접 제목까지 앞서서 지어주니 아빠는 부끄럽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다.
바다뿐만 아니라 인간사회에서 ‘하나가 된다는 것’처럼 아름다운 일도 없을거다.
특히나 우리처럼 남과 북이 갈라져 있는 사회에서는 ‘하나됨’의 의미가 진짜 소중할거 같구나. 이번 가족여행을 계기로 엄마와 아빠, 그리고 우리 누리가 함께 하나가 되어 멋진 화음을 만들어 보지 않을래?
‘하나가 된다는 것’이 모두가 한가지 색깔을 갖추는 것을 뜻하는게 아닌 것 알지?
일곱색깔 무지개처럼 각자가 자기 색채를 가지면서도 함께 어우러질때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소중한 하나됨’을 만들어 보자꾸나.
어느새 자정을 넘겨버렸네?
아빠도 졸음이 밀려온다. 날이 밝으면 우리 꼬마 아가씨는 또 어떤 말씨로 아빠를 놀래키려나?
안뇽. 아빠도 이제 우리누리 옆에서 잠을 청해야겠다.
이따가 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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