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및 논평

‘효도하겠습니다’

김포대두 정왕룡 2006. 9. 29. 08:39
 

‘효도하겠습니다’


28일, 유현초등학교 예술제 행사에 초청되었습니다.

가을이라 그런지 각 학교마다 운동회 학예회등의 행사가 많습니다. 특히 초등학교 행사는 엄마들을 비롯한 온 가족이 함께 참여하는 프로그램이 많아 학교가 잔치마당이 되는 경우가 흔한 것 같습니다. 김포 같은 도농 복합도시의 경우엔 아직도 농촌의 끈끈한 정서가 많이 남아있어 풋풋한 시골 향내음이 향수를 자극하기도 합니다.


개막식 행사 연단에 올랐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외부 손님들은 거의 안오고 학교관계자 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외부손님들이 많을수록 챙겨야 할 분들이 많고 학교선생님들이나 어머님들의 손길이 바빠지는 것에 대한 염려로 내부식구들 행사위주로 준비한 것 같다는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외부손님이 적은 덕분에, 내빈소개중 가장 먼저 소개되는 영광을 안게 되었고 더불어 축사까지 준비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 긴장되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했습니다.


‘학생이 행복한 학교 유현 초등학교, 2006 예술제 해맑은 유현’

행사안내 책자의 글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박귀옥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단체로 인사하면서 뭐라고 중얼거리는데 말을 잘 못알아 들었습니다.

옆에 앉은 조승현 운영위원장님께 물어봤더니 “효도하겠습니다” 라는 말이 인사구호라는 것이었습니다.


“학생 여러분, 사랑해요. 옛날 옛적에 친구들끼리 길을 가고 있었어요.”

애국조회 시간에 딱딱한 훈화만 기억나던 저의 머리에 동화구연가를 방불케 하는 박귀옥 교장선생님의 말씀은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옆 친구에게 얻어맞은 한 친구가 자기를 때린 친구의 이름을 모래위에 쓰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그 친구가 물에 빠졌는데 다른 친구가 구해주었어요. 그러자 그 친구는 바위위에 자기를 구해준 친구의 이름을 새겼어요. 이것을 본 또 다른 친구가 누구는 모래위에 ,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은 왜 바위위에 새기냐고 물어본 게 아니었어요?”


교장선생님의 말씀을 듣는 아이들의 눈동자가 초롱 초롱 빛나고 있었습니다.


“응, 모래위에 새긴 나를 괴롭힌 친구의 이름은 금새 지워지겠지만 나를 구해준 친구의 이름은 바위위에 새겨야 잊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랬어.”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이름이 모래위에 새겨지길 원하세요. 바위위에 새겨지길 원하세요?”

“바위요!”


“그렇죠?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고학년 학생들은 동생들을 스탠드에 앉히겠다고 의자를 들고나와 햇볕아래 운동장에 자리를 잡았어요. 동생들은 언니들의 이런 마음에 감사의 표시를 했어요. 이제 우리는 하나가 된거에요. 학생 여러분 사랑합니다.”


교장선생님의 인상적인 말씀이 끝나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다음 발언순서가 바로 저였기 때문입니다. 좌중에 남아있는 감동의 물결을 제가 깨뜨리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욱 당황스러운 것은 저도 학생들에게 ‘효도하겠습니다’라는 인사를 단체로 받은 것이었습니다.


“태어나서 ‘효도’하겠습니다 라는 인사는 처음 받아보네요. ‘학생이 행복한 학교’라는 구호를 봤는데 학생 여러분 진짜 행복하세요?”


“네!!!!”


“대답을 안한 사람이 두사람 있는 것 같아요. 어디 이번엔 어느 학년이 가장 행복한가 보자. 1학년 행복하세요?-네!, 2학년 행복하세요?-네!!, 3학년 행복하세요?-네!!!!!!”


“저도 너무 너무 행복합니다. 아까 여러분들이 ‘효도’하겠다고 했는데 정작 효도해야 할 사람은 저인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저는 여러분들을 위해 일할 일꾼이거든요. 효도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도 할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오늘 여러분에게 많이 배우고 갑니다. 어린이 여러분 사랑해요!!!”


뭐 대강 이렇게 말을 하고 단상을 내려온 것 같습니다.


“전 학생 모두 다 한번씩은 무대위에 서보게 프로그램을 준비했어요”

공연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박귀옥 교장선생님이 설명을 덧붙이셨습니다.


 학교안팎을 둘러보니 꼼꼼하고 섬세한 교장선생님 손길의 맛이 느끼졌습니다. 가정처럼 편안한 분위기 였습니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 여성교장 선생님의 이미지가 낯선 상황에서 저 역시 오늘 받았던 신선한 충격은 많은 것을 일깨우게 해준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들이 자선바자회를 진행하고 있는 교문곁을 지나와 다른 행사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보약한첩 먹은 듯 한결 가벼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