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및 논평

박사님이 전문가라고요?

김포대두 정왕룡 2006. 10. 18. 20:57
 

***박사님이 전문가라고요?***


23일부터 시작되는 김포시청 행정감사 준비를 위한 1일 연수가 17일 김포대학에서 열렸습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지방자치 권위자라 불린다는 정00박사의 특강으로 오후늦게까지 열띤 강의가 진행되었습니다. 서울대 법대, 프랑스 소르본느대 졸, 대학 부총장등 화려한 경력에 걸맞게 강의 또한 알차게 진행된 것 같았습니다.


<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개인의 경우 모든 계획이 한사람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지자체나 국가는 한사람에 의해 모든 것을 다할수가 없다. 독재국가의 특징이 있다. 한결같이 의회를 무시한다거나 거수기 역할을 하게 하는 것이다.

집행은 효율성이 특징이다. 그러기에 집행부는 수직적 특징을 띠지만, 의회는 수평적이다. 의회는 결정의 요체다. 의회가 없으면 민주주의나 지방자치제 자체가 안된다. 집행부 없는 의회가 존재할 수는 있어도(내각 책임제) 의회없는 집행부는 존재할 수가 없다. 유럽에서는 의회만 선출하는 지자체가 많다. 지자체의 요체는 시장이 아니라 의회다. 긍지를 갖자. 의회가 없으면 민주주의가 없다......>


나이를 지긋하게 드셨음에도 강의 서두부터 쏟아내는 열정적 강의는 오후 늦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한결같이 지방분권화의 의의를 내세우며 이것을 가로막고 있는 중앙관료들의 문제점, 그리고 광역지자체의 이중성(중앙정부에 대해선 분권화를 강조하고 기초자치단체에 대해선 감독권을 놓지 않으려는)을 질타하며 조목 조목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중앙관료들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중간 중간에 툭툭 던지는 말이 머리를 곤두서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참여정부 꼴 난다. 이런 식으로 막말하면 노무현 대통령처럼 된다. 북한이 핵실험까지 한 상황에서도 퍼주기를 강조하는 정신나간 사람들이 있다. 참여정부 들어 공무원 숫자가 2만명 이상 증가했다. 지표와 다르게 체감경기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자신은 원래 대통령제 지지자였으나 최근 몇차례 대통령들의 행태가 얼마나 국가를 망치는지 뼈저리게 느끼면서 내각책임제 지지자로 바뀌었다.”


그 자리가 경제전문가나 안보전문가의 특강 자리였다면 자기 주관의 문제이니 뭐 그러려니 했겠습니다. 그런데 명색이 지방분권화의 개척자라 자처하는 나이 지긋하신 분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라고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마치 한편으론 평화통일 전문가를 자처하며 다른 한편으론 전쟁불사를 외치는 사람이라도 보는 모습이었습니다.


‘의회주의를 무시하고 이땅의 민주주의를 유린했던 역대 대통령들을 한번 거론해주시겠습니까? 5.16 이후 압살되었던 지방자치제를 부활시키고 그나마 여기까지 밀고 온 사람들이 누구지요? 박사님께서 지방분권화를 가로막는 주범으로 그렇게 질타하시는 중앙관료들이 두터이 형성되어 기득권 세력화 된 때가 언제부터지요? 행정수도 이전에 담겨있는 지방분권의 의미를 어찌 생각하십니까?’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질문내용들이 많았지만 결국 참고 말았습니다.

대신 그날 참여한 의원들 중 유일하게 노트북을 열어놓고 거의 속기록에 가깝게 강의내용을 적어가며 실무내용들을 최대한 배우려 노력하였습니다. 수십년에 걸친 민주화 투쟁속에 단련된 일꾼들이 사회 곳곳에 뿌리를 내리려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도 전문가 그룹에 속하는 인재풀의 빈약함을 실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정박사와 치열한 논쟁을 하고 싶었지만 그 자리에선 나역시 ‘아마추어리즘’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 채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하는 기초단체 초선의원에 불과한 사람이었습니다.


강의를 들으면서, 해방이후에 해외각지에서 귀국하였던 독립투사들이나 그들의 후손이 새나라 건설의 과정에서 미군정에 의해 밀려나고 사회적응력을 확보하지 못한채 빈곤한 삶을 살아갔던 현대사의 불행이 떠올랐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지방분권 분야만은 철학이 빈곤한 테크니션이 아니라 제대로 된 가치철학을 겸비한 전문가들이 진보진영에서도 많이 나와야 한다는 아쉬움이 자꾸만 밀려왔습니다.


‘언젠가는 수많은 현장경험을 기초로, 실전과 이론을 겸비한 풀뿌리 전문가가 되어 내가 저 자리에 서보리라’


강의가 종료된 후 정박사와 악수를 나누며 마음속으로 다짐해 본 말이었습니다.


이땅의 풀뿌리는 아직도 많은 실전 전문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음을 느낀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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